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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작가

고유의 맛.

by 지훈
4e58c7bd-2f82-4807-87c3-5de208f3bd6b.jpg?webp=0&w=760&c=0%2C0%2C632%2C356 요리왕 비룡

맛의 작가라는 표현을 떠올릴 때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예술가가 생각난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열광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열망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음식은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같은 온갖 감각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예술이다. 그 모든 감각이 합쳐져 맛있다는 느낌을 일으키는 순간이 모이고, 우리는 그 찰나에 시간을 물들여 살아 있음을 더욱 진하게 느낀다. 그리고 몇 초, 몇 분 전의 순간들이 추억이 되어 뒤로 흘러갈 때, 음식은 그 추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 음식도 가지각색이다. 같은 식재료를 쓰더라도 어떤 조리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돼지 사골 육수를 재료로 삼았을 때, 밥을 넣으면 돼지국밥이 되지만 면을 넣으면 돈코츠라멘이 되는 것을 보면 음식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이 실감 난다. 더 나아가 똑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그것을 조리하는 요리사의 시간과 이야기가 더해지는 순간 전혀 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이처럼 요리사는 산재한 식재료를 재료 삼아, 자기만의 언어를 고르고 문장을 엮어 가듯, 음식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써 내려가는 작가인 셈이다.


우수한 작가가 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수없이 고심하듯, 정성이라는 이름의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음식의 질도 달라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이런 식의 치열한 정성 끝에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요리사든, 공학자든, 작가든, 자기 분야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가며, 그 결과로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창조물 앞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경외심을 가지게 되고, 나 역시 언젠가 이와 같은 빛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


결국 존경심이란 닮고 싶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며 나도 그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낀다. 타인이 이뤄 낸 업적이나 그 뒤에 깃든 노고를 보며,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용기를 얻는다. 요리로 치자면, 언젠가 나만의 맛을 찾아 내 손에서 직접 빚어내는 과정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맛 한술을 입에 머금을 때, 그 몇 초 동안의 감각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추억과 섞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맛의 작가라는 말은 그래서 식재료와 조리법을 넘어서, 음식을 통해 삶의 면면을 비추는 작가의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람의 시간이 녹아든 맛은 단순한 포만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오감과 결합해 짧은 순간을 깊이 있고 풍부하게 바꿔 준다. 그것이 바로 맛집을 찾아다니며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맛집에서 혹은 누군가의 정성 가득한 식탁에서 느끼는 것은 단순히 "맛있다"가 아니라, 누군가가 식재료라는 재료를 가지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빚어냈고, 그 결실을 함께 나눈다는 사실이 주는 감동이다.


그 감동은 우리가 각자 지닌 창조의 열망을 자극한다. 결국 많은 사람이 마주치는 매력적 작품은 곧 누군가의 뼈아픈 노력과 시간을 담은 결과물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만들어 나가는 것도,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내 고유의 일지 모른다. 그런 희망과 깨달음을 음식 한 접시 앞에서 떠올리는 순간, 이 세상을 향해 가진 애정도 조금 더 커진다. 결국 맛이란, 예술이자 삶이며, 창조물이자 기억이고, 나는 그 맛을 통해 수많은 감각과 시간을 수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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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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