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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세상과 나란

by 지훈

이 세상은 잔혹하지만 아름답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선들로 엮여 있는 듯하면서도, 그 얽힘 속에서 스스로 질서를 이루어 간다. 그 모습이 잔혹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가 그 질서에 편승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질서 안에 담긴 자유로운 흐름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모든 걸 제멋대로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려 해도, 언젠가 이유를 붙이려 드는 우리의 태도가 이 세계를 구속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은 때론 잔혹하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가 그저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장면조차, 과학 법칙이라는 틀을 씌우는 순간 자유로운 비행이 아니라 구속된 궤도로 보이는 이 모순. 우리를 낯설게 만드는 그 감정이 잔혹하지만, 동시에 신비롭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 즉 내가 생을 이어 가고 있음을 인지하는 데엔 내 몸의 징후들이 증거처럼 따라다닌다. 심장이 뛰는 울림, 그에 맞춰 흐르는 혈액, 들숨과 날숨 사이 팽창하는 폐의 느낌, 이 모든 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래서 살아 있다고 선언하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자는 명령을 내리는 셈이 된다. 시간의 축에 휩쓸리되,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찾아간다. 그 과정이 결국 성장이다. 나의 색깔을 만들어 내고, 구체적인 형태로 실존하게 만드는 확고한 발걸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장을 좇다 보면 본의 아니게 더 큰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해지고,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하는 말과 행동이 모이면, 언젠가 나만의 문장이 되어 이 세상 위를 흘러갈 테니까. 그것이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실체다. 몸소 만들어 낸 세계관이 곧 내 존재의 이유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계가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순간, 사실상 우리는 멈추고 만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경계를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 끊임없이 알고자 탐색하는 우리가 탄생한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한 발씩 나아간다. 그 발걸음이 긴 여정 끝에 닿을 이상향은, 아마도 무지의 저편에서 부드럽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 빛을 향해 달려가기에, 지금도 우리는 살아 있다고 느낀다. 잔혹함 속에 아름다움이, 아름다움 속에 잔혹함이 공존하는 세상. 그 한가운데서 이방인이자 모험가로서의 나는, 그 끝없는 배움과 깨달음의 길로 스스로를 부추긴다. 그것이 바로 이 세계 안에서 나를 정의 내리고, 다시금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일 테다. 그리고 그 과정을 나는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곧 경이로운 삶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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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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