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얽매는 인간
세상은 본래 무질서한 흐름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은 그저 제멋대로 현상을 일으킬 뿐이고,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흩어지고 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속에서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붙이려 한다. 이 행위가 세상은 사실 이런 원칙으로 돌아간다고 해석하는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움직임을 원래라면 단지 그렇게 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학 법칙이라는 틀을 씌우자마자 궤도를 따라 구속된 비행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질서가 부여된 듯 보이는 모습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 해석의 결과다.
인간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체계로는 국가와 종교가 있다. 둘은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서로 다른 뿌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국가는 헌법과 법률을 바탕으로 행정과 사법 체계를 갖추고, 국민의 행동을 규율하며, 이를 어기면 처벌을 가한다. 종교 역시 경전을 근본 규율로 삼아서 신앙 공동체를 이끌고, 성직자나 신학자가 이를 해석하고 보존한다. 시간이 흐르고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와 종교 모두 복잡하고 정교한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개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한편, 개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 집단적 체계는 일종의 안정감을 준다. 국가가 있어 국방과 치안이 유지되고, 종교가 있어 정신적 지지와 연대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 구조가 점차 강력해질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이미 짜 놓은 틀 안에 끼워 맞춰진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은, 본래 무질서하던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 낸 질서가 과도하게 확장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연은 원래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인간이 직접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어느새 이래야만 한다는 규범이 생겨나고, 개인은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국가와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집단의 확실함이다. 국가는 헌법과 법률로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국민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만든다. 종교는 경전과 의식을 통해 사람들이 정신적 지지와 윤리적 기준을 얻게 한다. 이 체계를 따라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모종의 보호와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그 체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혹은 그 체계가 개인에게 과도한 간섭을 할 때, 불편함이나 심지어 억압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거대 체계가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나거나 한쪽이 독점적 권력을 쥘 때 더 뚜렷해진다. 국가 안에서는 정치 세력이 충돌하고, 종교 안에서는 여러 분파가 서로 다른 교리를 내세워 다툰다. 이렇게 분열이 심화되면, 본래 체계가 의도했던 안정과 조화는 사라지고, 반대로 개인의 삶은 체계가 유발한 갈등에 휘말릴 위험이 커진다. 이는 곧, 개개인이 단순히 집단의 부산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나 종교라는 구조가 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타의적으로 주어졌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지는 각자 다르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내게 주어진 틀을 무비판적으로 따를지, 부분적으로 고치고 개선해 볼지, 아니면 완전히 벗어나고 다른 길을 모색해 볼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길을 택하든, 이미 사회가 만들어 낸 제도나 문화, 혹은 종교적 분위기를 전혀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건 왜 이럴까", "이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 체계가 제시해 놓은 의미나 규범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무질서하다고 여겨지는 자연과, 인간이 부여한 질서(국가·종교 등)가 뒤섞여 있는 이 세상은 한편으로 잔혹해 보이지만,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다. 잔혹함은 주어진 구조에서 내가 느끼는 구속감, 혹은 갈등과 억압에서 온다. 아름다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광경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국가가 지켜 주는 치안과 복지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종교가 제공하는 가치와 의식을 통해 심리적 평온이나 희망을 얻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 세상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우리의 의미 부여 덕분에 그것이 더욱 복잡하고 오묘한 질서를 갖춘 양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태양과 지구의 운동도, 사실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과학 법칙을 대입해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판단하자마자, 더 이상 자유로운 비행처럼 느껴지지 않고 어떤 필연적 구속처럼 여겨지게 된다. 인간이 세상에 붙여 놓은 이름표와 논리는 이처럼 경이로운 설명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래 그런 거야"라는 당위성으로 작용해 억압이 되기도 한다. 즉, 우리가 부여한 질서가 편리한 진리일 수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배타적인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갈까. 무질서한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얽매인 질서를 감수하며,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의미를 만들어 간다. 국가는 그 의미를 헌법과 법률로, 종교는 경전과 교리로, 또 가족과 사회는 각종 관습과 문화로 고착화한다. 그것이 우리 삶에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때로는 숨통을 조이는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이, 자연을 해석하고 의미를 씌우는 인간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인간은 본래 무질서를 그대로 두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기에, 스스로도 그 질서 안에 구속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무질서하나 얽매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 눈앞에 보이는 틀과 규범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무조건 따르지 않고, 스스로가 왜 그런 틀을 필요로 하는지, 또 그 틀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국가나 종교가 주는 틀 안에서 충분히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을 누릴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제도와 교리에 의문을 품고 바깥세상을 탐색하려 할 것이다. 이 어느 쪽도 절대 옳거나 틀리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결국 무질서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는 건,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귀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무질서하게 굴러가지만, 우리가 부여하는 해석과 규범으로 인해 얽매여 있다. 그러나 그 얽힘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얽힘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질서가 과도하게 확장돼 개인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짓누를 때다. 그럴 때 인간은 다시금 "과연 이 질서가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 질문을 하게 되고, 좀 더 유연하고 다채로운 관점으로 이 체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연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인간이 만들어 낸 질서 사이의 간극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이 간극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맛본다. 편안함과 안정감, 때론 구속감과 불만.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한데 얽혀 공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은 본래 제멋대로 굴러가지만, 우리가 이유를 붙이고 가치와 의미를 심는 순간, 그저 무질서했던 모습이 한편으로는 치밀한 구조처럼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순과 대비가 바로 무질서하나 얽매인 세상의 실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