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삼성 바이오 캠프에 다녀온 후

짧은 나의 생각들

by 지훈


IMG_0632.jpeg?type=w466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방문하면서,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조망할 기회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삼바’라고 통칭되는 이 기업군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삼성 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로’), 다른 하나는 바이오시밀러를 주로 만드는 삼성 바이오에피스(이하 ‘삼바에’)다.


삼바로는 쉽게 말해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레시피대로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 같은 역할을 한다. 특정 신약 후보물질이나 제조법을 기업이 의뢰하면, 삼바로는 세포주를 배양하고 검증하며 대량 생산까지 담당한다. 특히 항체 기반 약물 생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ADC(Antibody-Drug Conjugate) 생산설비를 계획 중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러한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삼바에는 바이오시밀러, 즉 특허가 만료된 약물을 복제하여 동등한 효과를 내는 ‘카피약’을 주로 개발하는 기업이다. 그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개발 기간을 단축하여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는 능력일 터이다. 현재 일부 신약 개발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핵심 역량은 여전히 바이오시밀러 쪽에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구조상 삼바에와 삼바로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진다. 삼바에에서 실험실 단계에서 만든 신약 물질과 생산 공정을 삼바로가 대량생산으로 이어가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바이오 제약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태계의 축소판이다. 예컨대, 신약을 연구하는 R&D 전문 기업, 원료를 공급하는 기업, 임상시험을 맡는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그리고 대량생산을 맡는 CDMO나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등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협업하여 약을 시장에 내놓는다.


삼바로와 삼바에 둘 다 근본적으로 ‘Wet Lab’에서 이뤄지는 일이 많다. 물론 최근에는 신약 후보군 탐색이나 시뮬레이션에 AI가 적용되어 ‘Dry’ 업무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주력 제품의 대량 생산이나 후속 공정은 결국 습식 환경(Wet condition)에서 세포주를 다루고 발효·정제 과정을 거치는 물리적 작업이 필수적이다.


한편, 이러한 고민의 중심에 놓인 질문은 결국 “어떤 제품이 이용자에게 확실한 가치를 줄 수 있는가”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내가 전자공학 쪽을 예로 들든, 바이오 제약 쪽을 예로 들든, 궁극적으로 ‘정확도’, ‘효율성’, ‘혁신성’ 등 다양한 평가 지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이용자에게 신뢰와 만족감을 제공해야 한다. 바이오약품의 경우 특히 ‘보편성’이 중요하다. 곧, 특정 대상에게만 탁월한 효과를 내는 약보다는, 독성이나 부작용이 적어 최대한 많은 환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필수적이다. 물론 일부 고가의 희귀질환 치료제처럼 극소수의 특정 사용자를 위해 고가의 약을 개발·공급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해당 기업의 전략이나 재무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 또는 서비스를 어떤 기준으로 설계할 것이고, 또 어떻게 유저를 끌어들일 것인가? 이 질문은 산업 분야를 불문하고 항상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


삼성이 삼바로와 삼바에를 통해 바이오 분야에서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삼성이라는 ‘거대 생태계’가 뒤를 받쳐 준 덕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예를 들어, 생산시설을 건설할 때 삼성물산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기에, 다른 바이오 기업보다 압도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공장 건설이 가능하다. CDMO나 바이오시밀러 모두 생산 속도와 생산량이 경쟁력이니, 건물을 짓고 설비를 갖추는 데 강점이 있다면 그것이 곧 회사의 성장동력이 되는 셈이다. 결국 기업의 단기적 성공을 장기적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선 ‘제품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생태계 전반을 구축할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내 진로와 관련된 고민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바이오 분야의 박사 과정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연구가 쉽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예컨대 전자공학이나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대한민국 산업구조상 비교적 넓은 취업 시장이 열려 있지만, 바이오 박사는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 세부 전공과 프로젝트 성격, 그리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충분히 ‘맞춤형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본다.


나의 경우, 학부 전공이 ‘바뇌과’라 불리는 융합 분야라,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데 강점이 있진 않다. 그래서 석사 과정을 통해 특정 연구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시에, 미래를 너무 앞서 고민하다가 현재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고 싶진 않다. 대학원에 진학해 실제 연구를 진행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흥미와 역량을 다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바뀌거나, 예상외의 기회를 만나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요약하자면, 나는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방문을 통해 바이오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대기업 생태계가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를 내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정말로 이 회사(삼바로·삼바에)에서 일하고 싶은가?’를 자문해 볼 계기도 생겼다. 현실적으로는 ‘건식(Dry) 환경’에서 센서나 전자공학 지식을 살리는 쪽에 더 마음이 끌리지만,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와 협업 기회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대학원 진학이나 산업계 진출 모두 장단이 있기에, 섣불리 결론짓기보다는 먼저 한 발 내디뎌 보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단순히 대기업 입사 자체가 아니라, 큰 조직 속에서 생태계를 이해하고 내 역량을 확장하는 경험이다. 그 뒤에, 내 기술과 네트워크가 만나 만들어낼 다음 단계의 기회는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갈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고민과 계획은 훗날의 방향성을 잡는 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keyword
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구독자 194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