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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이라는 매개체

불연속성이 주는 감정이란

by 지훈


3월 10일,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전문연과 현역 입영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해 왔지만, 결국 앞으로의 장기적인 계획과 꿈을 위해 현역 군복무를 택했다. 이 결정을 1학년 때부터 어느 정도 마음먹었기에, 한 발 앞서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미리 따 두고, 헌혈과 봉사, 토익 점수까지 꼼꼼히 챙긴 덕분에 공군 입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도전을 위한 도전이었다. 어떤 선택이든 내가 직접 마음먹고 추진한 결과물은, 결과가 어떻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이것은 나만의 성취였다’고 자부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군대를 앞두고 있다 보니, 최근 일상이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바로 카이스트와 부산을 오가며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쌓인 추억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입영이라는 불연속성이 머지않아 일상에 찾아온다는 사실 덕분인지, 한 번 얼굴을 보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고작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대학생활을 함께했던 동기·선후배들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을지 모르는 법이다. 누군가는 졸업해 사회인이 되어 있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석사 또는 박사 과정 진학을 준비하거나 이미 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 복학했을 때, 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응원의 감정을 품게 된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기 전,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나는 작은 모임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평소보다 더 깊고 진솔해지는 듯하다. 잠시 떨어져 있던 동안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해왔고, 또 어떤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지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마음 한 편에 들어가 함께 헤매거나 공감하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스럽게 내 고민과 이야기도 꺼내놓게 되고, 그렇게 서로에게 미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이렇게 소소한 대화가 쌓여 갈수록, ‘한동안 떨어져 있어도 우리가 쌓아둔 신뢰와 우정은 곧 다시 이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긴다. 사실, 사회에 한 발 먼저 나가서 회사를 다니게 될 친구, 학위를 위해 연구실에 남게 될 친구, 그리고 복학 시점이 달라 학교를 떠나게 될 친구 등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1년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완전히 끊기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마음속 깊이 자리한다.


나는 군 복무를 대학교 생활의 단절이 아닌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잠시 쉬어간다는 느낌도 있고, 또 그 사이에 스스로를 새롭게 단련하고 인생의 다른 국면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병영생활이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 겪게 될 규율과 생활 패턴, 그리고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 등은 결코 평범한 대학 생활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자양분이 될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할 때의 내 모습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가 아주 긍정적일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여러 이유로 전문연 대신 현역을 택한 것도, 어쩌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내 안의 목소리 때문이었을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계획적인 준비, 공군 입대 자격을 얻기 위해 공들였던 노력 모두가 이런 결정을 뒷받침하는 작은 퍼즐 조각들이었다.


곧 군에 입대하지만, 대학에서 맺은 인연들이 사라지거나 옅어지진 않으리라 믿는다.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져 있더라도, 함께 겪은 추억과 공유한 대화는 계속해서 우리 관계의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2년이라는 소소한 추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특별한 가치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군 생활을 시작하면, 대학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즐거움을 찾게 될 수도, 때론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이 길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오직 나의 몫이다. 그리고 이 입영이라는 경험을 통해 성장한 내가, 앞으로의 삶에서 더욱 단단하고 유연한 태도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언젠가 복학해서 학교에 돌아왔을 때, 분명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강의실의 풍경,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 그리고 내 내면 역시 전에 없던 변화가 생겨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미 대학 생활 속에서 다져놓은 우정과 소통의 경험이 있으니, 그 변화를 맞이하는 데 큰 두려움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져 있을 거라는 기대가 크다. 입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학교 밖에서의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몸소 체험하고, 한동안 캠퍼스를 떠났던 시간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줄 테니까. 마치 잠깐 분리되어 있다가 다시 합류한 물줄기가, 더 큰 강물이 되어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입영이라는 결심은 불연속보다는 확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껏 함께해 온 친구들과 선후배, 앞으로 만나게 될 동료들, 그리고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새롭게 마주할 세상 모두가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마음을 나누는 짧은 만남과 대화가 주는 힘은 절대 작지 않다. 그리고 이 힘을 발판 삼아, 입대 후의 시간 또한 의미 있고 소중한 여정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어느 날, 먼 훗날 지금을 돌아봤을 때, “3/10 입영을 앞두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때의 결정이 참 소중한 경험으로 이어졌구나”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이 선택을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이자, 입영이라는 매개체가 내 인생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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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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