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창조하는 이들이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변 세계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단순히 울고 웃으며, 배고픔과 포만감을 구별하는 정도였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배워 가는 과정 속에서 더욱 정교한 평가의 틀을 몸에 익힌다. 옷 하나를 고를 때도, 음식의 맛을 음미할 때도, 사람 관계를 유지할 때도,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평가가 숨어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판단하는 본능적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판단을 토대로 우리는 말이나 글, 행동이나 작품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곧 창조다.
평가와 창조라는 두 개념은 겉보기에는 분명히 구분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삶의 모든 장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방식으로 함께 작동한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일상 속의 다양한 순간을 떠올려 보면 좋을 듯하다.
가령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는 단순한 행동조차도, 그 안에는 평가와 창조가 녹아 있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평가가 먼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재료를 골라 조리하며, 나만의 아침 식사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이 음식이 비록 특별한 레시피가 아닌 평범한 것일지라도, 재료를 선택하고, 조리 순서를 정하고, 간을 맞추는 행위 자체가 내 의식을 통해 창조로 이어지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평가와 창조가 동시에 일어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기반으로 내 말을 꺼낸다. 여기서 내 말 한마디가 단순히 상대의 말에 부합하는 대답일 수도 있지만, 때론 전혀 새로운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주말 행선지를 물었을 때, 다른 여행지를 추천하거나 가고 싶었던 카페를 이야기하는 등 전혀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왜 떠올렸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 이전 경험과 취향을 평가한 뒤, 그 결과를 창조적 제안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독서 또한 평가와 창조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책이나 기사를 읽는다고 할 때, 우리는 텍스트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문장과 단어를 재해석하며 자신의 관점에 비추어 본다. 이러한 작은 속삭임들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그것들이 곧 하나의 평가 과정이다. 그리고 그 평가 끝에 어떤 부분은 동의해 내 것으로 흡수하고, 또 어떤 부분은 거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의문을 만들어 낸다. 그런 식으로 책을 덮을 때쯤 되면 독서 전의 나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새로운 내 생각을 갖게 된다. 이 역시 평가에서 창조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취미 활동에서도 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언제 어떤 풍경을 담을지 끊임없이 주변을 스캔한다. 구도에 만족하기도 하며, 피사체가 사진의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등 내면의 평가가 순간순간 벌어지고, 그 결과 역광으로 찍으려 하거나 조리개를 조절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렇게 새롭게 시도한 사진 한 장이 곧 창조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평가와 창조가 교차하는 원리는 예술이나 학문, 심지어 일상 전반에서 두루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행위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근본적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만나면 먼저 평가를 시도한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어 그 평가 결과에 기초해 새로운 행동 방안을 마련하거나, 독특한 해석을 만들어 내거나, 문장이나 작품의 형태로 구현한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이 과정 때문에, 인간이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평가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매 순간 이 과정을 선명하게 의식하는 건 아니다. 많은 평가와 창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며 신호등을 보고 도로 상황을 판단한 뒤, 건너기로 결정하는 것도 일종의 평가와 창조다. 내 안전을 위한 판단(평가)이 곧 길을 건넌다는 결정(창조)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물론 이는 아주 사소한 수준의 예이긴 하지만, 그것조차 인간이 본능적으로 행하는 의미 부여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재미있는 건, 이런 평가와 창조의 반복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고,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보면, 그대로 멈춰 있을 것 같고, 외부 환경이 주는 자극을 수동적으로만 수용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삶에선 발전도, 변주도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끊임없이 뭔가를 고민하고 나름대로 판단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다른 접근이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태도는 변화를 이끌어 낸다. 사소한 일상부터 거대한 혁신까지, 모두 이 원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부단히 평가하고 창조해 나갈 때마다, 이 세상이 실은 불확실한 곳이라는 사실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생각해 봐도, 결론이 영원히 확실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물리 법칙이든, 사회의 규범이든, 사랑이든, "정말 이게 절대적이냐"라는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불확실함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확실해지고 싶다는 갈망을 심어 준다. 그 갈망에 따라, 우리는 생각을 고도화하고, 예술이나 기술, 제도 등 다양한 모습을 창조해 내며,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에 답해 가려고 애쓴다.
예컨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도 본질적으로 지금 이 시대, 이 상황에서 나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가치가 무엇인지를 평가하고, 그것을 작가적 언어나 색채, 조형으로 표현(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우리가 거기에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담아낸 평가와 창조가 우리의 내면과 어딘가 맞닿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 역시 세상이 주는 정보와 현상을 평가해 이론을 도출하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구나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창조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인간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판단하고 만들기를 반복할까.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조금이라도 더 확실한 무언가를 찾고 싶다"라는 열망이 계속해서 꿈틀대기 때문이다. "이것이 옳다", "이 방법이 맞다"라고 선언해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각도나 새로운 지식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음에도, 우리는 그 잠정적 확실성이라도 붙잡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한 번 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보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키거나 다음 발걸음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나를 존속시키는 전략일 수도 있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구축하려는 야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왜 고귀한 본성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우리가 모든 사소한 것까지도 "이건 어떻지?" "좀 더 나은 방법은 없나?" 하고 질문하는 태도 자체가, 불확실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가 우리를 발전시키고, 서로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비록 우리는 결코 ‘절대적 확실함’에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예술과 과학, 철학과 기술을 낳았다는 사실을 보면, 이 본성은 실로 귀하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한편, 이렇게 끊임없이 평가와 창조를 반복하는 태도는 때로 피로감을 준다. 남들은 그저 지나칠 상황을 굳이 물고 늘어지며 의미를 찾으려 하고, 완성된 작품이나 규칙을 또 손봐서 재창조해 보려 하는 모습이 번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이 가진 근본 동력이라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길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평가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고귀함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도, "과연 얼마나 전해졌을까" 하고 다시 평가한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또 새 문장을 떠올려 쓸 것이다. 독자 또한 이 글을 읽고 "이 대목이 좋구나, 별로구나" 하고 가늠한 뒤, 마음속에 새로운 이야기나 생각을 펼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본성—평가와 창조—을 실행하며,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확실성, 아니, 잠정적인 확실성이라도 만들어 간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가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이 힘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동시에 우리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고귀한 본성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