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움의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포용력

by 지훈

배움의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마음을 여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을 품으려는 부드러운 포용력, 그것이 배움의 첫걸음이다.


배운다는 것은 곧,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익숙한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일. 변화는 낯설고 때로는 두렵지만, 그 앞에서 움츠러든다면 우리는 점점 굳어버린다. 배움을 거부한 자는 결국 정체된 채로 남는다. 그렇게 굳어버린 마음으로, 과연 인간다움이라 불릴 본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시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의 강물이다. 그 흐름은 멈추지 않으며, 우리는 그 강물 속에서 부유하는 존재다. 시간은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집착하고, 번뇌에 잠긴다. 잡으려 해도 사라지고, 멈추려 해도 흘러가는 것들 앞에서 허무와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그렇게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행복은 찰나의 빛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시간을 가공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다. 무의미로 가득한 시간을, 우리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의미라는 이름으로 새겨 넣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배움은 바로 그 의미를 만드는 첫 불씨다. 배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변화는 다시 우리를 더 배우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고요한 순환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자신을 넘어서기 시작한 자는, 타인을 품을 수 있게 된다. 타인의 고통, 낯선 환경, 생경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자는, 결국 시간의 경계조차 초월하게 된다. 그는 이미 시간을 극복한 자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깊게 하는 일이며,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언제나 깨어 있고, 깨어 있는 자는 결국 스스로에게 진실해진다. 그리하여 그는 또 다른 배움의 길을 스스로 열게 된다. 그렇게 이어지는 배움의 고리는, 무아(無我)의 경지로 이끈다. 나를 잊고, 세상을 품는 자리.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다. 그것이 곧 삶의 본질이며, 살아 있다는 것의 증표다. 처음 마주하는 세계 앞에서 그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짐승의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그 감정을 가공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깨어난 자는 자기만의 광휘를 펼친다. 그는 더 이상 방황하는 이가 아니다. 시간 위에 선 자이며, 의미를 창조하는 자이고, 타인을 이끄는 자다.


그는 위대한 승리자다. 고요히, 그러나 확고히, 세상을 배움으로 물들이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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