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지속성은 애석하게도 계산 위에 서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좋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득이 되기 때문인 걸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애초에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본질적으로 유기적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만큼, 서로의 존재가 유익해야 지속된다. 그 유익함은 꼭 물질적이거나 표면적인 이득일 필요는 없다. 정서적인 안정, 함께 있을 때의 편안함,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역할. 하지만 어쨌든 어떤 방식으로든 주고받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관계는 유지된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변하면 관계도 변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생각도 감정도 달라진다. 예전에 좋았던 것이 지금은 부담이 되기도 하고, 서로 맞물리던 퍼즐 조각이 점점 어긋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변하는 것에 기대어선 안 된다는 것을. 고정된 관계란 없고, 모든 것은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것, 혹은 누군가가 나를 떠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깊숙이 나를 조여 온다. 그 불안은 목줄처럼 조였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하며 숨을 가쁘게 만든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타이르지만, 진심은 자꾸만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한때 나를 이해해 주던 존재가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언어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상실이자 거부이기도 하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다. 끊임없이 나를 조정해야 하고, 관계의 미세한 온도차에 민감해야 하며, 때로는 나 자신을 속이기도 해야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먼저 고민하게 되는 순간들도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정작 나는 점점 모호해진다. 나는 누구이고, 이 관계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그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떠난다. 그대들의 정신은 먼저 떠나고, 남은 것은 그대들의 텅 빈 육체뿐이다. 언젠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사라지고,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인사조차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어떤 이들의 부재 속에서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잊지 못해서 살아가고, 잊기 위해 애써 살아가는 삶. 참으로 부조리하고 모순된 감정 속에서 오늘도 살아간다.
나는 왜 이토록 번뇌하는가. 왜 자꾸만 어긋나는 관계에 마음을 내어주고, 다시 붙잡으려 애쓰는가. 아마도 나는 아직도 관계라는 것에 기대고 싶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유한하고 덧없는 삶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삶을 버티게 해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기대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들어오며, 누군가는 말없이 곁에 머무른다. 나는 그 모든 흐름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번뇌도, 상실도, 아픔도 결국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조각일 뿐이다.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언젠가 지금 이 순간조차 그저 그랬던 시절로 회상하게 될지라도, 나는 지금 이 감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