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이름 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것은 결코 한결같이 흐르지 않는다. 순간에 깃드는 나의 의미에 따라 하루는 일주일처럼 길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1초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시간은 외부의 객관적 흐름이 아니라, 내 안에서 태어나고 변형되는 하나의 감각이다.
우리는 이 흐름을 온전히 견디지 못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에 취하는 일이다. 술과 음식, 사랑과 꿈, 그리고 야망과 목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것들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그 본질은 같다. 우리는 무언가에 취함으로써, 시간의 무심한 강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는다면, 세계의 부조리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없으며, 모든 노력은 결국 무너지고, 모든 욕망은 끝내 사라진다는 것을.
시간은 잔혹할 정도로 무의미하게 흐른다.
그리하여 인간은 취한다. 취함으로써, 순간에 의미를 덧입히고, 무의미한 시간 위에 작은 깃발을 꽂는다.
나는 시간이라는 광대한 바다를 떠도는 배다. 때때로 나는 배의 키를 무언가에게 맡긴다. 달콤한 꿈, 격렬한 야망, 타오르는 사랑, 혹은 단 한 잔의 술이 키를 대신 잡는다.
그 순간, 나는 선장의 자리를 벗어나 선실 깊은 곳에서 눈을 감는다. 바다를 뒤흔드는 파도도, 머지않아 닥칠 폭풍도, 잠시 동안은 내 관심 밖이다. 나는 외면함으로써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다. 배는 여전히 흘러가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다시 키를 잡아야 한다. 다가오는 폭풍을 피해 나아가는 것도, 구름 너머로 어렴풋이 빛나는 별을 따라 길을 찾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다.
나는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손에 쥔 키만은 나의 것이다.
삶은 어쩌면, 취하고 깨어나는 것의 반복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몰두 속에서 잠시 안식을 얻고, 다시 깨어나 세계의 부조리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단단해진다. 무너짐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다시 키를 쥐는 힘을 기른다. 취함은 도피이지만, 도피로부터 깨어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알게 된다. 세계는 여전히 부조리하고, 시간은 여전히 무심하며, 존재는 여전히 덧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 키를 쥐고 폭풍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 별빛이 흐릿하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걸 잊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