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착수

by 지훈

착수. 또다시 나는 대국을 시작한다.

이 바둑판은 내 삶의 무대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 흑과 백을 번갈아 놓는 한 명의 기사다. 상대는 하나가 아니다. 누구나 각자의 수 읽기를 하고 있고,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첫 번째 조건이다.


상대의 눈빛, 손끝, 호흡의 흐름 속에서 나는 기류를 읽는다. 그들이 펼치려는 진행이 무엇인지, 유연한 변화구를 숨기고 있는지, 혹은 허를 찌르는 창의적 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그 모든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진짜 실력이다.


나는 이미 다면전의 한복판에 앉아 있다. 이곳은 단순한 일대일 승부가 아니다. 수많은 인물들과 동시에 바둑을 두고 있다. 각기 다른 성격, 다른 습관, 다른 스타일. 누군가는 정석을 중시하고, 누군가는 변칙을 선호한다. 나는 이 판 위에서 매번 처음부터 포석을 고민한다. 높게 갈 것인가, 낮게 둘 것인가. 안정적으로 둘 것인가,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국면은 끊임없이 변한다.

처음에는 협공처럼 보이던 수들이 어느 순간 포위망이 되기도 하고, 신뢰했던 수가 어느새 배후를 노리는 급소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며 타협해야 하고,

때로는 맷집을 보여주며 큰 돌을 버려야 한다.

내가 버린 돌이 상대의 시야를 흐릴 수도 있고, 놓친 줄 알았던 집이 시간이 지나 승부처로 떠오를 수도 있다.

바둑은 단선이 아니라 입체다. 실수와 복기, 가능성이 켜켜이 쌓여가는 게임이다.


인생도 그렇다.

나는 지금 몇 명과 동시에 두고 있는가. 가족, 친구, 사회, 그리고 나 자신과도. 각 대국은 서로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결국 하나로 얽혀 있다.


실수는 피할 수 없다. 가끔은 호구를 허용하기도 하고, 대마가 몰려 외통에 걸릴 위기도 맞는다. 하지만 바둑에는 패가 있다. 버티고 맞서고 타이밍을 재는 싸움. 패를 이기기 위해 나는 수를 엮고, 상황을 유도하고, 복수를 준비한다.


지금 이 한 수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두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나는 결국 선택해야 한다.


이 바둑판은 19줄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캔버스. 수천 개의 가능성이 흩어진 무한한 공간 위에서

나는 다시 한 수를 놓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수많은 대국 속에서, 나는 어느 판에서 밀리고 있으며, 어느 판에서는 우세를 점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모든 바둑이 끝났을 때, 내 앞에 남는 집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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