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부쩍 주방 출입이 잦아진 나를 바라보며
내가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 엄마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바로 '요리'였다. 무슨 요리든 척척해내는 당신과 달리 딸인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사실 엄마가 워낙 요리를 잘하는 분이셨기에 나는 차려주시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느라 요리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또 그리고 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고.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여동생과 함께 둘이서 살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간혹 요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라면이나 김치볶음밥을 해 먹는 수준에 그쳤다. 대부분 밀키트나 배달 음식에 의존했고, 간간이 엄마가 고향에서 보내주시는 반찬들로 한 끼를 해결하곤 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엄마 나름대로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나를 볼 때마다 음식을 하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하셨다. 엄마의 걱정이 더해질 때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신랑이 잘 하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신랑은 못하는 게 없어"라며 상황을 피했다. 그렇다. 사실 우리 신랑은 요리를 꽤나 잘하는 편이다. 결혼 직전에 혼자 사는 기간 동안 배달 한번 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이 직접 찌개부터, 국까지 모두 끓여먹었던 사람이다. 덕분에 난 신랑의 요리 실력만 믿고 선뜻 결혼하겠노라 나설 수 있었다. 내가 못해도, 신랑이 잘 하니까. 신랑이 요리를 하면 난 설거지를 맡으면 되니까. 끝까지 내가 요리하겠다고, 내가 배워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막상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 입주하고 난 후로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주방이다. 라면 하나 겨우 제대로 끓이던 내가 따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찌개부터 만둣국 그리고 굵직한 요리들을 해내고 있다. 크게 유튜브 영상으로 레시피를 찾아본 것도 아닌데,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대충 이런 이런 재료가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것저것 넣으니 원하던 요리가 완성됐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처음 해보는 것치고 맛도 제법 훌륭했다. 신랑도 맛있다고 연신 칭찬해 주었다.
신랑의 칭찬은 나의 요리 열정에 불을 지폈고, 난 요즘 그렇게나 좋아하던 배달 음식을 멀리하고 매일 저녁을 직접 만들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두 내 손으로 뚝딱 만들어 냈다. 비록 엄마처럼 한꺼번에 다양한 음식을 만들진 못하더라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스펙트럼을 넓혀나가고 있다.
신랑은 나의 이런 변화가 놀랍다고 했다. 결혼하면 본인이 모든 요리를 전담해야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아내가 요리에 흥미를 붙여 매일 저녁을 풍성하게 차려주는 것이 신기하단다. 예쁜 그릇에 정성스럽게 음식을 담아내고 플레이팅까지 하는 나를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신랑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이 일을 겪고 보니 마음만 먹으면 뭐든 못하는 일은 없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주방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내가 막상 마음을 먹으니 매일 저녁 밥상을 차려내지 않는가. 이젠 자신감까지 생겨 조금 더 복잡한 요리에도 도전해 볼까 한다. 한식 외에도 양식까지 시도해 볼 계획. 연말에는 집에서 쿠기도 구워볼까 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그릇 욕심도 생긴다. 과거엔 쳐다도 보지 않던 그릇들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엄마 집의 부엌을 보며 왜 이렇게 그릇이 많나 했었는데, 이젠 엄마의 그릇 사랑이 절실히 이해된다. 최근엔 르쿠르제에 꽂혀 엄청 사들였는데, 이젠 또 스타우브의 주물 냄비에 눈이 간다. 컬러랑 사이즈가 어찌나 다양한지···.
이젠 엄마랑 옷이 아닌 그릇 쇼핑을 다녀야겠다. 내가 써 보고 좋은 제품들은 엄마께도 사드려야지. 다음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땐 엄마에게 잡채 만드는 법도 전수받아야겠다. 야무지게 배워서 신랑에게, 그리고 늘 나를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대접해야지. 얼른 그런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