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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Nov 15. 2021

매일 부지런히 쓰는 사람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씁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방송작가의 꿈을 이뤘으나 현실은 처참했다. 이럴 줄 몰랐다. 생각했던 것과 업무가 완전히 달랐다. 코너 일부를 맡아서 쓰려면 아무리 짧아도 최소 5년은 걸리니, 난 늘 연예인과 패널을 섭외하고 촬영 현장을 세팅하며 자막을 쓰기만 했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월급이라도 많았으면 참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근 프리랜서인 탓에 월급이 아닌 일급으로 페이를 정산 받았고 명절 연휴라도 포함되는 달에는 정말이지 통장 잔고가 비참했다. 그래서 접었다. 도저히 방송 작가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간절하게 바라고 바라던 직업을 던져버리고 나니 한동안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오래 방황했다. 다행히 마케터로 방향을 틀었고 방송 작가 생활을 지속했을 때 보다 훨씬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다. 내가 애초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희망했던 것도 대본 그러니까 글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블로그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방치한 블로그라 보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봐주는 사람들이 없어 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무렵,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 접하게 된 독립출판의 세계는 실로 놀라웠다. 기획부터 원고 작성, 편집, 디자인, 홍보, 유통까지 모두 혼자서 해내야만 하기에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지만 나만의 책을 내가 만들고 세상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고 말았다. 

허나 혼자 준비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기획과 원고 작업까지는 할 수 있는데 디자인 작업이 문제였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능수능란하지 않더라고 인디자인을 조금이라도 다룰줄 알아야만 한다. 결국 엄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독립출판 클래스를 수강하게 되었고 표지, 내지 디자인 팁은 물론 내가 공들여 만든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인쇄를 하고 어떤 경로로 시중 독립서점에 입고하고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배웠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에 돌입했다. 

독립출판 감성을 살려 나름 위트있게 목차를 짜고 본격적인 원고 작업에 돌입했다. 자신 있는 주제였고 이미 모아둔 글감이 있어 원고 작업이 제일 수월할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사서 읽는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심해졌다. 글 한 줄 한 줄 힘이 들어가다 보니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기 시작했다. 힘겹게 원고를 다 완성하기는 했으나, 며칠 동안 차근차근 읽어보니 이건 도저히 돈을 주고 사서 읽을 만한 퀄리티가 아니었다. 이대로 출간한다면 자존심이 상하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원고를 다 드러내고 재작업을 시작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는 책이 8월 말이면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선언한 탓에 계속 출간 예정일이 언제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빨리 책을 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매일 퇴근 후, 새롭게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 투성이었지만 초고보다는 훨씬 좋았다.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만의 표현을 사용했다. 또 솔직한 내 감정을 과감없이 모두 적어갔다. 


그렇게 매일 퇴근 후 쓰고, 쓰고를 반복한 결과 드디어 원고가 완성되었다. 아직 수정해야 될 것들이 많고 오타도 찾아내며 비문도 고쳐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다행히 표지 디자인은 유능한 디자이너님께 의뢰하여 완성한 상태고 책등 높이를 조절하고 ISBN만 발급받아 삽입하면 되는 거의 완벽한 상태다. 그러나 뭔가 모르게 불안했다. 아직 내지 디자인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 클래스에서 인디자인 사용법을 충분히 숙지했지만, 원고 작업이 늦어지면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결국 에세이 수업을 통해 친분을 쌓은 독립출판 작가님의 추천을 받아 스토리지 북앤필름의 책 만들기 클래스에 신청했다. 나름대로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했으나, 디자인을 잘 해내어 성공적으로 독립출판에 입고할 수만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 당장 이번주 토요일부터 시작인데, 하루빨리 디자인을 마무리 하여 오랫동안 공들여 쓴 나만의 책을 모두에게 선보이고 싶다. 설령 혹평을 받는다고 해도 괜찮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나만의 책 작업과 더불어 다른 분들과 함께 하는 공동 집필 작업도 시작했다. 오랫동안 눈여겨 본 독립출판 작가님께서 1인 출판사를 설립하시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지난 기수는 놓쳐서 이번에는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독립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가 기성출판 공저자로 참여하는 일이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퇴근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써도 마감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타이핑을 많이 하는데, 퇴근 후에도 손가락이 쉬지를 못하니 매일 손가락 통증으로 고생 중이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하다. 체력도 떨어져 매일 아침 영양제를 목구멍으로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 주스를 털어 넣어야만 출근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즐겁다. 힘들어도 재미있다. 요즘처럼 신난 적이 없다. 매일 글을 쓰는 삶. 다양한 소재로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가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누군가 글을 쓰는 것이 생업이 되는 순간, 정말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글만 쓰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해 보고 싶다. 다소 희박하지만 만약 내 책이 판매량이 높고 꾸준히 재쇄를 하게 되며, 글을 통해 얻는 수입이 지금 회사에서 받는 연봉을 초월하는 그날이 온다면 전업 작가로서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다. 아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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