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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an 18. 2022

책보부상은 이제 막을 내렸지만.

2022. 01.16 아주 특별한 기록


한달 전의 늦은 밤, 카톡이 울렸다. 내게 좋은 에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었던 성혁 작가님의 연락이었다. 작가님은 내게 1월 16일에 있을 책보부상 페스티벌에 참가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당시, 아직 책도 인쇄하기 전이었던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작가님, 제가 무슨 책보부상 행사를 하겠어요. 
책도 없는데, 택도 없는 소리죠."


계속 안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작가님은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셨다. 나중에는 "그럼 딱 하루만 참여해 보면 어때요? 그럼 부담스럽지도 않잖아요."라고. 결국 난 작가님의 진정성 있는 설득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번듯한 책도 아직 없을 뿐더러, 경쟁률이 워낙 치열하다고 하여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그냥 신청서를 제출하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여러 날 신청이 가능했지만, 난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단 하루만 신청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신청은 했지만, 당연히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감히 내가, 책보부상 페스티벌에 합류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참여 불가 메일을 받고 나면 아주 오랫동안 속이 쓰라릴 것 같아서 잊기로 했다.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렇게 '엄마, 서울은 왜 이래?' 출간 준비에 정신이 쏠려 있던 어느 날, 성혁 작가님의 카톡이 날아들었다.

"유정님 축하해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시나 해서 카톡을 자세히 확인해 보고는 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내가 책보부상 페스티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책보부상 주최쪽으로부터 온 메일을 빨리 열어보라는 작가님의 말씀에 부랴부랴 확인을 하니 사실이었다. 참가자 명단에 내 이름 '한유정' 석자가 떡 하니 박혀 있었다. 

사실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난 뒤부터는 극도의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책이야 곧 나온다고 쳐도, 난 태생적으로 무언가를 판매하는 데는 소질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생각보다 낯가림도 심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버거워했다. 사실,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참가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었다. 참가비를 입금해야만 최종 접수가 마무리 되는데, 입금을 하지 말까를 수백번은 되뇌었다. 

하지만 해보기로 했다. 분명 좋은 기회고, 내 책을 알릴 수 있는 데는 이만한 행사가 없으니까. 언제 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2022.1.16 


드디어 행사날 아침이 밝았다. 큰 캐리어를 들고 부랴부랴 강남역 인근의 일상비일상의틈 건물로 들어갔다.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제일 일찍 도착했다. 한산한 부스들을 지나 내 자리를 확인하고, 미리 준비한 도면을 확인하며 세팅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만큼 예쁘게 세팅이 되지 않아 속상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대한 정성을 다해 매대를 구성했다. 

11시가 좀 넘어가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 잠시 멍하게 있는데 아주 예쁘게 생긴 여성분이 나의 부스로 다가왔다. 한참을 내 책을 들여다 보시더니, 본인도 강원도에서 와서 책의 내용들이 무척 공감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도 목차며, 뒷 부분이며 한참을 더 살펴보시더니 대뜸 '저 이 책 살래요. 한 한 권 주세요. 아, 작가님 싸인도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오프라인에서 지인이 아닌 진짜 일반인 독자분께 책을 판매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싸인을 해드리려면 책을 감싸고 있는 포장 비닐을 벗겨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비닐을 벗기지 못해 한참 동안 씨름을 했다. 다행히 가방에 있던 커터칼로 겨우겨우 포장을 벗긴 뒤에, 싸인을 해드렸다. 바들바들 손이 떨렸는데, 독자분께 들키기가 싫어서 어찌나 손에 힘을 줬던지, 그분이 떠나시고 난 뒤 강한 어깨통증이 밀려와 괴로웠다. 



첫 번재 구매자님이 떠나가시고, 그 후로는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다들 양손 무겁게 꽃다발과 케이크 그리고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셔서 부스를 찾아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어떤 지인은 나도 모르게 부스를 박차고 나서 얼싸안고 반가움을 표한 분도 있다. 모두들 추운 일요일, 강남까지 일부러 나를 보러 오셔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2~30분 간격으로 이어지는 지인들의 발걸음과 축하 인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5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니, 어느새 매대에는 책보다 지인들의 선물이 더 많아졌다. 쌓이다 못해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선물들을 혼자 읊조렸다.


'이 은혜를 난 어떻게 다 갚지...'


지인들은 감사하게도 책을 2권씩 구매해 주시기도 하고, 3층의 스토리지북앤필름에까지 올라가셔서 남아 있는 내 책을 사주시기도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라며, 해맑게 웃으며 양손 무겁게 나를 떠나던 지인들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행사도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자, 행사장이 조용해졌다.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작가님도 계셨고, 나 역시 그러했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도 했고, 1월 초 출간 이후 연일 강행군을 이어온 탓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미처 판매하지 못한 남은 책을 다시 주섬주섬 캐리어에 주섬주섬 집어 넣고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분께서는 나를 힐끗 한 번 쳐다보시더니, 미처 캐리어 속에 들어가지 못한 샘플 책 한 권을 들고 한참을 읽으셨다. 표지도 요리조리 살펴보시고, 목차를 보시면서 킥킥 웃기도 하셨다. 그렇게 5분쯤 책을 들여다 보시더니, 내 눈을 딱 쳐다보시며 "저 책 한 권 주세요."라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집에 갈 궁리만 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책을 준비한 봉투에 담아서 건네려고 하다가 잠깐 멈췄다. 마지막으로 책을 사주신 그분께 작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마침 미리 집에서 챙겨온 간식들이 있어서, 매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쓸어담아 책 봉투에 함께 넣어 수줍게 그분께 전달드렸다. 

"이제 곧 집에 가기에 사실상 이 책이 마지막 판매인 셈인데요. 오늘 저의 마지막을 빛내 주셔서, 제가 약소하지만 간식을 좀 넣어드렸어요."라고 말씀드리면서. 



그분께서는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네시고 행사장을 나가셨다. 멀어지는 그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또 이런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체력이 따라주지는 않았지만 준비하느라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책을 찾아주고 사랑해 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힘을 내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보부상 행사에서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책을 판매했다. 물론 지인들이 많이 사주셨지만, 진짜 일반 독자님들이 사주신 것도 꽤나 많았다. 그중에서도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자며, 번호를 교환한 분도 계셨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생겨나가는 것이겠지. 

책보부상은 끝났지만,
내게는 지인들의 사랑과 관심이
새로운 독자님들의 호기심과 애정이 남았다.

다시 이런 북페어에 참여할 기회가 올까.
만약 온다면,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꽉 움켜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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