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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an 13. 2022

외숙모께 언제쯤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

제2의 엄마가 되어주셨던 우리 외숙모.

엄마와 아빠는 늘 바쁘셨다. 엄마는 당시 과외를 하셨고, 아빠는 목재와 관련된 일을 하셨다. 두 분다 본인들의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정해져 있는 퇴근 시간이 없었다.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기 위해 밤낮없이 뛰셨다. 덕분에 난 자연스럽게 외숙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맞았다.

외숙모와 외삼촌께서는 우리 집 바로 아래층에 사셨다. 외삼촌께서는 회사를 다니셨기에, 자연스럽게 나는 외숙모 손에 맡겨졌다.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서 나를 아래층으로 데려다주시면, 외숙모께서는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까지 나를 맡아 돌봐주셨다. 


말 많고 말썽꾸러기였던 조카를 숙모께서는 항상 "예쁘다, 사랑스럽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여 내게 동화책도 많이 읽어주셨고 동요도 많이 불러주셨다. 이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아직도 그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흥이 많은 우리 외숙모는 냉장고에다가 동요 가사를 붙여두시고는 수시로 내게 불러주셨다.


 또, 햇볕이 따사로운 날에는 내 손을 이끌고 동네 공원으로 나들이도 데려가주셨다. 외숙모와 소풍을 가면 사람들은 우리를 모녀라고 오해했다. 심지어 "딸이, 엄마를 빼다 박았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호탕한 성격의 숙모께서는 "맞아요~ 우리 딸이에요. 딸!"이라고 응수하시며 내게 찡긋하고 윙크를 날리셨다. 아직도 왜 그렇게 그 일이 생생한 것일까. 아마 숙모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 

숙모는 나를 친딸 이상으로 사랑해주셨다. 훗날 사촌동생들이 태어났을 때도, 나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다. 야채를 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늘 신경써서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사촌 동생을 업고 내 손을 붙들고 학원까지 데려다 주시기도 했다. 그것도 정말 수도 없이. 유년시절, 숙모는 제2의 엄마셨다. 아직도 어렸을 때의 일들을 가만히 회상해 보면, 엄마 만큼은 아니지만 숙모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많이 떠오른다. 


성인이 되고, 돈을 벌게 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엄마한테도 잘해야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외숙모께도 정말 잘하자고. 내가 잘 한다고 해서 그간 외숙모께서 나를 키워주신 은혜를 모두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챙겨 드리고,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언젠가 내가 사드린 명품 화장품을 들고 숙모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한바탕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 조카는 날 이렇게 매번 챙긴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어찌가 기분이 좋던지. 아주 미세하게라도 그간 숙모가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에 보답을 한 것 같았기에. 

애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사람이라, 외숙모께 자주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는 못했다. 이 글을 통해 외숙모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의 유년시절을 찬란하게 빛내주셔서
따뜻함과 평온함으로 물들여 주셔서
사랑과 정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조카이지만,

평생 동안 친딸처럼 잘하겠다고.

외숙모께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다들 나보다 동생인데, 난 그 두 동생을 사촌동생이 아닌 진짜 친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외숙모와 외삼촌을 닮아 한없이 착한 우리 두 동생들. 어느덧 부쩍 자라 남동생은 취업을 했고, 여동생은 대학생이 되어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두 동생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 켠이 따뜻해 진다.


지난밤, 대구에서 취업 교육을 받고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심히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는 동생의 말에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점점 성장해 가고 멋진 남자로 도약하는 동생이 왜 이렇게 대견한지. 외숙모께서도 나를 보면 이런 마음이셨을까. 이젠 그동안 외숙모께서 어떤 마음이셨는지 알 것 같다. 

새롭게 출발하는 남동생을 위해 누나인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숙모처럼 인생의 전반에 걸쳐 엄청난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작게나마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싶어 요즘 머리를 굴리고 있다. 사촌동생이 아닌 내 남동생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보다 더 소중한 동생이니까! 남동생의 성공을 나의 성공보다 더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 당장 교육을 받느라 힘들 테지만,
잘 견뎌서 세상을 빛내는 사람이 되기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며
즐겁게 사는 어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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