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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세이스트 Jan 12. 2022

자취생의 입이 호강하는 순간

우리 집에 '엄마'가 왔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달 만에 엄마가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금요일은 회사에서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이것저것 마감할 것들이 많아 바쁘고 지친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하나도 힘들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다. 곧 엄마와 남동생을 만날 수 있으니까!

빠르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대청소를 했다. 2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을 치우고 또 치웠다. 오랜만에 서울에 온 엄마와 동생에게 너저분한 집을 보여주고 싶었지 않았기 때문.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인 결과, 집이 놀랍도록 깨끗해졌다. 

최적의 집 컨디션에 만족한 나는 평소에는 뿌리지 않던 방향제까지 잔뜩 뿌리고 집을 나섰다. 손이 시려울 정도로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노량진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여동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엄마와 남동생 마중을 나갔다.

곧이어 SRT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수많은 인파속에서 엄마와 동생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엄마의 짐을 확인하니 역시 상당한 양이었다. 엄마의 짐은 곧 요리 재료다. 한 눈에 봐도 무거워 보여 내가 받아들었는데, '헉'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얼마나 무겁던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벽돌 10개를 들어올리는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보니 온갖 식재료가 엄마의 가방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싱싱한 채소부터, 엄마가 전날 공들여 만든 밑반찬과 삼겹살까지! 엄마는 원래 소고기를 사오려고 하다가, 내 책 '엄마 서울은 왜 이래?'의 [내겐 너무나 아찔한 삼겹살 1인분의 가격]을 보고 삼겹살을 사오셨다고 한다. 도저히 내용을 보고 안 사올 수가 없었다고 활짝 웃으면서.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엄마와 거의 6일간을 함께 있었다. 엄마와 지내는 기간 동안,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다. 요리와 거리가 먼 나는 집에서 무언가를 해먹는 일이 잘 없다. 기껏해야 라면을 끌여먹거나, 배달을 시켜 먹거나, 아니면 밥에 간단한 양념을 넣어 비벼 먹는 정도다. 고작 그런 수준에 그친 내게 엄마는 아빠가 내게 잠시 선물해준 초일류 요리사였다. 


▲ 회사 동료들과 나눠 먹으라며 새벽부터 말아준 엄마표 김밥
▲ 열악한 원룸 주방에서도 노릇하게 구워낸 엄마표 호떡


▲ 새벽부터 재료를 준비하여 공들여 만든 엄마표 잡채


엄마는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듯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각종 재료로 한가득 채우고, 떡볶이부터 호떡, 김치전, 잡채, 김밥까지 정말 엄청난 음식들을 해줬다. 참고로 우리 집은 고작 8평 남짓한 원룸인데다가, 주방은 한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정도로 좁다. 인덕션이기 때문에 화력도 좋지 않고, 냉장고도 숙박 업소에나 있을 만한 사이즈고 개수대도 딱 한개 밖에 없다. 이렇게 최악의 환경에서 엄마는 손이 많이 가기로 악명 높은 잡채까지 완벽하게 해줬다. 오직 딸들에게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최악의 환경에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심지어 출근하는 내게 회사 동료들에게 주라며 김밥 12줄을 챙겨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출근하자마자 같은 부서는 물론, 타부서 직원들에게도 한줄씩 나눠주는데...어찌나 흐뭇하던지! 엄마 덕분에 난 최고의 6일을 보냈다. 그간 애써 다이어트를 해놓은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조미료 대신 정성이 듬뿍 들어간 엄마의 음식 컬렉션을 모두 섭렵했으니 그걸로 만족, 대만족이다. 

맨날 사고만 치는 딸이지만,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했지만, 
그래도 "자식이라서 봐준다"며
경주에서부터 양손 무겁게 재료를 준비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엄마
진심으로 고마워!

엄마가 있어서, 
딸들은 서울에서도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

아! 우리 아빠도, 막내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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