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눈물처럼 비가 내렸다...
그날도 비가 왔다. 계절학기가 끝나가는 8월의 어느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2번의 휴학 끝에 마지막 학기 장학금을 받고 나는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기적이라 했지만, 나는 눈을 가리고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겨우 졸업이라는 문턱을 넘었지만 이름 없는 청춘으로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단발머리에 무릎까지 오는 아이보리 스커트를 입고 하얀색 작은 카라가 귀여운 팥죽색 반팔티를 입은 내가 꽃다발을 들고 학사모를 쓰고 친구들과 함께 우산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은 그 사진들 밖에 머물러 있다.
오랜만에 본 엄마는 반의반 쪽이 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씩씩한 엄마는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핏기 없는 얼굴에 쭈글쭈글 앙상해진 팔다리, 기도원에서 두 달 간의 금식으로 야윈 엄마를 보는 순간, 한겨울 찬 바람이 불어왔다. 쏴~~~~ 쏴~~~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기특하게도 내 눈물을 가려주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축축한 날이어서 나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학교 근처 중국집에 갔다. 졸업을 축하해 주러 온 친구들과 동생, 부모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혹시라도 점심값이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무사히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 나를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낸 것은 함께 온 남자친구의 눈빛이었다. 고작 10만원 정도의 딸아이 졸업식 점심값도 없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부모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비난과 혐오, 조롱이 가득했다. ‘비참하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아닌 진짜 뜻을 나는 그날 온몸으로 느꼈다. 순간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모르는 척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그 눈빛에서 단 하루도 도망가지 못했다. 그 눈빛이 매일매일 나를 쫓아다녔다. 자려고 눈을 감아도 그 눈빛이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잠 못 이루는 날들도 허다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눈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결국 그 눈빛만 남은 그 사랑은 한동안 끝나지 않는 비극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금도 종종 그날의 눈빛에 갇히는 날이 있다.
그곳에서 울고 있는 스물다섯의 나를 만난다.
이제는 그 소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방 밖으로 나가서 거울을 보라고
지금 네가 얼마나 환하게 빛나고 있는지
스스로를 그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말라고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결국 너는 그 어둠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 햇살이 될 거라고.
마흔다섯의 내가 스물다섯의 나를 다시 응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그 눈빛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눈빛을 향해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젠 우리 다시는 꿈속에서도 만나지 말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