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십대 청춘의 시작과 함께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다시 이름을 찾기까지 나는 17년이라는 긴긴 시간이 걸렸다. 긴긴 밤이었다.
영화 '와일드'에서 여주인공 쉐릴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오다 다시 자신을 찾기 위해 극한의 공감 PCT를 걷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부수고 싶었던 청춘의 한 때가 떠올랐다.
한때 가족이라는 무덤 속에서 나를 구출해 내기를 갈망하던 날들이 있었다. 차라리 고아가 되고 싶었던 처절한 날들, 그 무덤에서 나와야만 오로지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의 딸이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똑바로 서고 싶던 날들, 하지만 자꾸만 흔들리고 쓰러지던 날들, 결국엔 이름까지 잃고 하찮은 불빛 하나로 겨우 깜박이며 살아내던 날들을 뒤로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나서야 그 가족의 품에서 다시 나를 찾았다.
나의 청춘은 IMF와 함께 왔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던 어려운 시절에 나는 갓 스무살이 되었다. 나라의 부채를 갚기 위해 그들이 아이들의 돌반지와 가락지를 들고 나올 때, 스무살이 갓 넘은 나는 알 수 없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성인이 된 나에게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관대했다. 그리고 그 관대함이 곧 나의 불행이 되었다. 내 이름 사인 한 장으로 너무 쉽게 수십 장의 카드가 만들어지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은행에서도, 휴대폰을 개통할 때도, 나는 내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억척같은 빚 독촉이 이어지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뛰고 덜컥 겁이 났다. 길을 걷다가도 일상적인 전화벨 소리에 놀라고,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자주 놀랐다. 그 일상의 공포가 얼마나 거대한지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떻게든 꼭꼭 숨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내가 오늘 당장 사라진다 해도 그 어디에도 나의 흔적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집도 없이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잠시 동생과 막내 이모집에 얹혀 살던 적이 있다. 20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세 아이를 키우던 막내 이모가 우리에게 작은 방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혼자 살던 막내 이모는 엄마와는 다르게 유독 깔끔한 성격이었다. 하루는 동생이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 길로 나는 동생을 데리고 이모집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한 평 남짓의 고시원뿐이었다.
내 이름의 모든 카드값과 대출, 마지막에는 내 학자금대출까지 모두 아빠의 사업자금으로 들어갔다. 사업을 하겠다고 중국으로 건너간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로 죽는 소리를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애처롭게 애원하는 아빠에게 엄마는 할 수 있는 모든 돈을 탈탈 털어 보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며. 대학졸업 한 학기를 남기고 더 이상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나를 부수고 싶었다.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자 자랑이었던 딸, 나 자신을 부수는 것이 엄마에 대한 최고의 복수일 것이기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PC방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의 쥐꼬리만한 월급까지 몽땅 가져가는 엄마가 미워서 아니 그 돈으로라도 대학을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부끄럽고 미안해서 나는 졸업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5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늘 내 지갑은 텅텅 비었다.
나는 매일 모래성을 쌓는 기분이었다.
남동생은 아직도 술을 먹으면 월급날 엄마가 PC방으로 찾아오던 날들의 이야기를 한다. 노랗게 탈색한 짧은 머리에 키만 껑충 크고 깡마른 남자아이가 PC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하얀색 월급봉투를 내밀던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끔씩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부채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길 위에서 나의 모든 분노와 절망은 엄마를 향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에게 끊임없이 크고 높은 꿈을 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면 서점에 데려가 책을 사주고, 클래식 음악 테이프를 사주던 엄마, 시궁창 같은 현실과 클래식이라니 산동네 단칸방에서 듣는 클래식 선율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희망과 긍정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내게 닿기도 전에 비눗방울처럼 사라졌다. 때로 오로라처럼 오묘한 빛을 내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더 깊은 동굴로 빠져들었다.
긴긴 밤이었다.
청춘의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처럼 시리도록 잔인한 일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_김애란 장편소설’ 중에서).
그렇게 나의 청춘은 한 평 남짓의 고시원에 갇혔다.
더 슬픈 일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후에 내가 마주하게 될 가난의 진짜 얼굴에 비하면 청춘의 가난은 참으로 가벼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