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신이 있다면 엄마의 기도 보다 내 기도가 먼저 닿기를...
어린 시절 새벽에 뒤척이다 얼핏 잠이 깨면 자주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어떤 날은 눈물로,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언어로, 그 기도가 너무 절절하여 어린 나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곤 했다. 엄마가 했던 그 이상한 말이 나중에 커서 방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 하나님과 엄마만이 아는 비밀의 언어로 절규하듯 기도하는 엄마는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가 아는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집안 살림이 어려워질수록 엄마의 기도는 길어졌고 점점 더 자주 하나님만이 아는 엄마의 얼굴로 존재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금식기도를 시작하면 밥을 주는 일도 자주 잊었고, 말을 잃고 웃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집에서 버티기 힘든 날에는 산골 기도원에 들어가 몇 주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도 많아졌다. 그렇게 반쪽이 되어 돌아온 엄마의 얼굴은 다시 웃고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반쯤은 우는 얼굴로 반쯤은 웃는 얼굴로 나를 안아주었다. 대부분의 기도 제목은 아빠가 하는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고, 대부분은 누군가의 금전적 도움으로 가까스로 급한 불은 끄는 형국이었다.
그 시절 엄마에게 기도는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절망의 얼굴이었다.
엄마의 기도가 길어질수록 나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그 기도가 빈집에 남겨진 어린 우리들을 깊은 어둠으로 내몰고 있었다.
두 달간의 금식기도로 엄마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위태롭게 숨을 쉬고 있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그 녀석을 엄마에게서 떼어버리고 싶었다. 나도 처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다.
‘제발 우리 엄마를 놓아달라고. 이대로 우리 엄마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이미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다.
‘천국을 가게 해 준다는 그 달콤한 말로 우리 엄마를 더 이상 속이지 말아 주세요!’라고 어린 나는 기도했다.
어린 나의 울부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을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죽지 않고 숨을 쉬고 있었다. 반쪽이 된 뼈만 남은 앙상한 엄마의 손을 잡고 잠든 날 어린 나는 어쩔 수 없이 울면서 기도했다. 엄마를 살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지만 철이 들고부터는 나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엄마의 기도는 엄마를 살게 하는 간절한 숨이었지만, 내게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고 뾰족한 가시가 되어 매일매일 새로운 생채기를 남겼다. 정작 엄마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고 아픔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장에서 나물을 팔며 하루하루 푼 돈을 모아 용돈을 쥐어 주시던 할머니의 거친 손,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알바를 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남동생의 아픔, 그 시린 아픔이 내게는 그 어떤 기도보다 소중해 눈물이 났다.
제발 신이 있다면 그 아픔을 모른 척하지 말아 주시길.
제발 나의 기도가 엄마의 기도 보다 먼저 신에게 도착하길 빌었다.
시리도록 아팠던 눈물의 날들을 지나 더 이상 엄마의 기도가 날 울리지 않는 날이 왔다.
엄마의 숨이 되어주었던 그 기도가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 기도가 그 어떤 매질보다 나를 아프게 했던 날들이 있었음을 잊을 수 없다.
엄마는 그 기도 덕분일까 지독하게도 모진 세월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소녀 같은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소녀의 얼굴로 엄마가 환하게 웃을 때면 종종 나는 슬퍼진다.
소녀가 된 엄마와 할머니가 된 소녀가 서로를 마주 본다.
내가 할머니의 얼굴을 한 소녀를 어루만진다.
할머니의 얼굴을 한 소녀의 얼굴이 점점 투명하게 흐릿해진다.
언젠가 엄마의 기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