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소녀는 엄마를 사랑했을까?
몇 날 며칠 장대 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여름날이었다.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올라오셨다. 나보다 연약해 보이는 앙상한 무릎으로 굽이굽이 산동네 오르막길을 걸어 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들어오시는데 좁은 방안을 휘둘러 보시더니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간 얼굴로 나를 보시며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보셔서 나도 그저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할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늘 그랬다. 별 대화 없이 그렇게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성난 목소리로 꾸짖으면 ‘죄송해요’라고 말해야 끝나는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와는 늘 그런 대화가 가능했다.
금식기도로 야윈 엄마의 얼굴만 보아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학교는 서울로 보내고 싶다며 억지로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작은 방 하나를 얻지 못해 결국 시골집에서 서울을 오가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다 겨우 산동네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엄마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졌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언덕 위에 있었다. 학교에서 큰길까지 10분쯤 걸어 내려오면 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린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좁디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오른다. 어른 걸음으로도 족히 20분은 걸어야 올라올 수 있는 산동네의 작은 우리집 아니 작은 방으로 가는 길. 유일한 나의 기쁨은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길의 중턱즈음 대학교와 맞붙어 있는 담벼락을 타고 흘러나오는 피리소리였다. 초여름 뽀얀 연두빛으로 돋아나는 풀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일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차올라 잠시 쉬어가려고 앉은 골목길 중턱에서 그 피리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 나도 모르게 그 벽에 기대어 잠시 쉬어갔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는 산들바람을 타고 누군가의 휘파람처럼 내게 온 그 피리소리가 좋아서 어떤 날은 교실에 앉아서도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떤 날은 대학교 담장에 기대어 그 피리소리를 듣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누가 불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는데 나는 그 담장 너머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마치 나의 세계와 피리소리의 세계가 다른 세상 같아서 그 담장이 한없이 높고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외로움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날 밤 빈 쌀독을 헤집던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할아버지의 손이 같이 시골로 내려가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며칠째 비가 와서 눅눅한 방에 누워 생각했다. 시골에 가서 할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뜨끈하고 보송한 온돌방 아랫목에 누워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이라도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고 싶어졌다. 아침인지 밤인지 헤아릴 수 없는 깜깜한 새벽 여전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할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따라 나오며 내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손이 너무 따뜻해서 잠시 흔들렸다.
‘이대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시골집으로 내려갈까?’
그런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여윈 엄마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괜찮다며 할아버지 손을 놓고 집을 나왔다. 여느 때처럼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집을 나섰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뒤돌아보니 아직도 그 자리 그대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셨다. 어여 가라고 손짓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당장이라도 뒤돌아 내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날 휘저어 놓았다. 도망가듯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길을 가다 천둥이라도 치면 무서워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 할아버지가 보인다. 그렇게 큰길까지 내려가는 길에 몇 번이고 뒤돌아 보아도 이상하게 할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 같은 얼굴로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나를 지켜왔다. 뒤돌아 보고 싶은 순간마다 그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할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을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깊은 바다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에도 결국 엄마 곁에 남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 그 소녀는 그렇게 울음을 삼키며 엄마를 사랑했구나.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른 채. 앞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 될지도 모른 채.
지금도 6월이면 종종 그 피리소리를 떠올린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피리소리의 정체는 팬플룻이라는 악기였다. 그 어떤 음약 보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해주었던 그 피리소리와 그리고 신기하게도 뒤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손짓하던 할아버지에게 이제야 '안녕!'이라고 안부를 건넨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나는 오늘 그 시절 소녀를 안아준다.
때로는 세월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시절을 견뎌낸 소녀의 용기처럼.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시절의 소녀와 작별하고 있다.
내 안에 다 자라지 못한 그 소녀와 잘 이별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