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이도 시골아이도 아닌...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4개의 학교를 다니고, 4번의 이사를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기억 속의 나는 시골아이였다.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1년을 보내고 2학년에 강화도로 이사를 갔고, 그 작은 섬에서도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는다. 어린 나는 그저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을 뿐이다.
두 번째 초등학교는 지금은 사라진 작은 시골분교였다.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은 작은 분교, 아이들은 학교를 오기 위해 왕복 2시간 이상을 걸어 다녔다. 하루에 버스가 3번만 다니는 곳,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버스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남은 뿌연 흙보라가 글썽이는 내 눈으로 들어오면, 온통 희뿌연 세상이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 세상에 나 홀로 남는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장면이 이토록 뚜렷하게 남아 있는 건, 내 마음 안에 아직도 헤어지지 못한 슬픔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충분히 나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지 못했고,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렇게 애도의 길에 서 있나 보다.
그런데 시골의 작은 분교에서 아이들은 나를 서울 아이라 불렀다. 하얀 얼굴에 새초롬한 표정, 말수가 없고 자주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던 나에게 검게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하루에 왕복 2시간을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는 시골아이들은 마치 처음 읽는 동화책 같았다.
하지만 이내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시골아이가 되었다. 봄이면 할머니와 냉이, 달래를 캐러 다녔고, 뒷산에서 진달래를 꺾어왔다. 또, 겨울이면 봉긋 솟아 있는 무덤 위로 비료포대를 깔고 눈썰매를 타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뒷산에서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탐정놀이를 하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거친 손이 나를 지켰고, 할아버지의 자전거로 자전거 타는 법도 처음 배웠다. 그렇게 나의 모든 처음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중학교를 서울로 가기 위해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고 네 번째 학교에서 나는 다시 시골아이라 불렸다. 게다가 나는 서울에 집이 없었다. 그것은 당시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비밀이었다. 매일매일 혹시라도 나는 비밀이 들킬까 두려워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최대한 나는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전한 모범생이 되기로 했다. 학교에 지각하는 날에는 선생님이 ‘아프다’는 나의 거짓말을 믿어주기만을 바랐다. 그것이 나에겐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나처럼 전학을 온 친구가 2명이나 더 있었다. 자연스럽게 전학생 3명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이 바빠 늦은 저녁시간까지 혼자 지내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쳤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때문에 혼자 지내는 친구는 우리들에게 자주 라면죽을 끓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라면죽을 생각한다. 내가 다시 끓여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이면 그때 그 시절 유년시절의 허한 마음을 채워주었던, 친구들과 호호 불며 나눠먹었던 그 라면죽이 생각난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조차도 내게 집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털어놓고 싶었지만 내 비밀이 들통나면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결국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앞으로 살면서 내가 더 많은 비밀들을 가지게 되리라는 것을. 그 비밀이 가장 작은 비밀이었다는 것을.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에서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라고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곧 이내 소녀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내게도 그 소녀가 마주한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나에게도 울지 않으려고 여러 번 눈물을 삼켰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비밀이 많은 아이는 함께여도 잘 스며들지 못한다. 결국 혼자만의 작은 방에 갇히게 된다. 나는 그것이 ‘고립’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큰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나의 방은 점점 더 작아졌다. 부모들은 미처 알지 못한다. 아이가 어떤 방에서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져 가는 것에만 분노할 뿐.
학교에서 나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나의 거짓말은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비밀을 듣고도 모른 척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선생님이 나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기를 바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난 다시는 내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고립의 시작이었다. 그때 나에게 나의 고립을 알아봐 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한 번이라도 나의 작은 방을 두드려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유년시절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왜 나는 이토록 나의 유년 시절을 자꾸만 되새기고 있는가. 그것이 고립인지도 모른 채 외로움인지도 모른 채, 너무 일찍 이 세상의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서 그 시절 그 소녀의 얼굴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내가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이다. 이제 작은 방에 갇혀 지낸 그 소녀에게 손을 내밀어 밖으로 꺼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생각이 멈춘다. 탯줄을 끊고 태어난 아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탯줄로 부모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세계를 통해 세상을 만난다. 나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방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아니 아이들이 그 방문을 닫고 들어가더라도 나는 그 방문 앞에서 언제든 문을 열고 나오면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 내어 말해주어야 한다. 나의 아이들이 나를 통해 이 세계로 아주 깊이 뿌리내리며 스며들기를.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소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