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를 보고 사랑하는 손녀를 떠올린 어느 할머니

chap.01.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빨다 생긴 일.

2024. 08. 07


비가 안 올 거 같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좋겠다. 여우는 시집이라도 가네.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비 오나.'


오늘은 매장에 최고 위치의 직원분이 오셔

점검을 하러 오셨기에


평소보다 청소를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나는 FM 대로 성실히 해왔기에 1년을 버티고 일할 수 있었다.)


오늘은 바닥 담당이었다.


기름걸레로 대리석 바닥을 쓱쓱 닦아준 후

물걸레 청소를 위해


대걸레를 빨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하는 습관이 있다.


바로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그리고 더 나만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나의 모습을 체크하는 것이다.



보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오우, 오늘 화장 잘 됐는데, 예뻐 아주 좋아.'


'내가 확실히 이쁘긴 하는구나.'


'어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물이 오르네.

나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고 글을 써야 하나.'


상상이 많은 그리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는

여인다운 습관이다.


그렇게 거울을 보고 옷매무세를 가다듬고


대걸레를 팍팍 빨고

짤개에 물을 쫙쫙 짜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화장실 칸에서


주황색 야상을 입으신

할머님이 나를 보시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다는 듯이

아련하게 나를 쳐다보며 나에게 다가오셨다.


아이고...세상에 어쩜 이렇게 우리 손녀랑 똑같이 생겼을까.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손녀분도 한 미모를...)


삐-----------



그렇게 생각하다


할머님의 표정을 보고 뭔가

아픈 이야기가 있으신 거 같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손녀분도 알바를 하시나요??"


"아니, 알바도 안 하고 집에서 혼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우리 아가씨는 학생인가? 왜 이렇게 어리게 생긴 얘가 벌써 취직했나 보네."


"아니요, 할머니. 저 대학교 졸업하고 취준 하면서 알바하고 있는 거예요."



"보기 좋다. 이런 데서 알바도 하고, 취준 준비도 하고.

알차게 살고 있는 게 너의 얼굴에서 보인다.


우리 손녀가 아가씨처럼

참 옛 되고 공부도 잘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성적도 너무 좋고 그랬는데..


얘가 갑자기 정신적으로 아프기 시작해 가지고..

신경 안정제 먹다가


지금은 너무 힘들다고 먹지도 않고.


방 밖에서 안 나와서 사는지 정말 오래됐어요.


우리 손녀가 아가씨처럼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게 내 소원이에요."



할머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드리고 싶었지만

매장에 중요한 직원분이 오신 상황이라


더 못 들어드린 게 너무 아쉬웠다,


처음 보는 나에게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며

아파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우시고 마음이 아프시면 그러셨을까 싶었다.


"그 아가가 정말 공부도 잘해서.

대전에 있는 그 유명한 대학교 있잖아요.

'카이스트' 거기도 갈 정도로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안 다니겠다고 하고

지금 대학 유예하고 결국에는


대학교 졸업도 못 했어요.


컴퓨터 뭐시긴가 전공했는데...


그래서 내가 신경 안정제라도 먹으면서

버텨보라고 아비한테 얘기했는데


갸가 못 먹겠다 하더라고요.


에휴... 내가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파요.

좋은 일이 제발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빨리 가야 하는 데

할머니의 아픔에 더 공감해드리고 싶은데


매장에서 콜이 오기 전에

남은 시가은 단 30초.


그 30초 동안 내가 그분께 무슨 말씀을 해드릴까 고민하고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머니, 제가 그래도 요즘에 살아보고

이렇게까지 와보니까요.


대학교 졸업하는 게 저도 현실적으로는

맞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좋은 대학교 나왔다고

모든 게 잘 풀리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에요.


할머니,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손녀님만의 시간이 지금은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거뿐이지


멈춘 건 아니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손녀님은 분명, 똑똑하신 분이시니까

현명한 선택을 결국엔 하실 거예요."



"그래도, 대학은 졸업해야지.

대학도 자퇴하고 에휴..."


"학벌 안 중요하진 않죠.

그런데, 할머니


그냥 사람마다 흐르는 시간이 달라서 그런 거니까.
옆에서 같이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저 되게 복덩이여서


저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다 잘 되거든요.


오늘부터 좋은 일 많이 생길 거예요.

저 믿으세요."



그렇게 말씀드리면서


할머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할머님도 내가 빨리 가야 하는 상황인 줄 눈치채시고


나를 보내주셨고

그렇게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참 일하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집에 가서

잠깐 휴식을 취하러 갔다.


(아! 참고로 나의 집이 있는 건물 밑에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화장품 잡화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휴식을 집에 올라와 쉬고 내려 간다.)



역시나


머루와 아로가 나와

뒤집어지면서


나에게 팔을 쭉 뻗었고


두 마리를 동시에 쭉쭉이 해주면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오늘 그 할머니를 떠올렸다.


'아... 오늘 매장에 그 중요하신 분만 안 오셨으면

더 얘기를 들어드리는 건데...


내가 그래도 위로가 되셨을까...


나를 보고 할머님의 손녀분도 잘 헤쳐나갔으면

나의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게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마음이 정말 힘드셨구나...'


집사가 깊은 생각에 잠긴 걸 알고


아로가 내 옆에 올라와

엄마 뭐 해?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해주었다.


평소처럼 아로는


나를 보면서 가만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뜬금없이


예전, 내가 정말 지옥같이 힘들었을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다 그 시절을 이겨내


지금 이렇게 아로 앞에 있는 순간을 자각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아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이어갔다.


아로는 평소처럼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를 보며 갸르릉거렸다.


아로에게 얘기를 해주고 나니

내 머릿 속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의 시간이 그때는 정말 안 흐를 줄 알았는데

결국엔 흘렀고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이게 바로 '성장'이라는 것일까.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조언을

30초 만에 떠올리다니...


그만큼 내가 많이 극복한 거구나.


나 참 잘 컸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앞에 있는 아로를 보면서

아로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로야, 우리의 시간이 다 다르게 흐르는 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가족이어도

친구여도

연인이어도


타인의 다른 흐름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거 같아.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고

'부부가 있고

'친구'가 있고

'자매'가 있고

'남매'가 있는 건


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할 팔자라는 것을 아니까


같이 흘러가려고 애쓰는 게
사랑인 것일까.


아파도 답답해도

신경 쓰인다는 거는


진짜 사랑한다는 뜻이고
아낀다는 것이구나.



마치, 너, 아로의 시간이

인간인 엄마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내가 더

너의 공허함을 느끼는 해가

더 길 것도 알면서도


너와 함께 있는 이 순간순간에도

너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네가 아플 때 신경 쓰이고

걱정하는 게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구나.


그리고


너, 아로 또한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나의 수많은 브런치 글들에는

'아픔'

'역경'

이 존재한다.


나 또한

나의 공간에 갇혀

사회로 나오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할머님의 손녀분의 상황에 정말

많은 공감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악물고 나의 꿈을 향해

이겨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따뜻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잘 큰 것이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의

조언, 관심으로


나 또한 이렇게 채워져 간 것이었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가장 힘든 순간


센치해지기 쉬운 비 오는 날 어느 아침에


비를 잠시 막고

잠시 멈추어 걸어온 길을

위로해 준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주었다.


나는 잘 크고 있어서


앞으로도

더 잘 커서


내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설령 내가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받지 못해도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비 막이 한 그루의


작지만 큰 나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큰 나무의 가지에는

아로와 머루


그리고 늘 나와 함께했고

내가 이렇게 크게 도와준



사람,


사람,

 

사람들


자리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큰 냥이가 츄르를 쇼핑할 때는 배부를 때 쇼핑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