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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인이 되고 싶은데요.'

chap.03. 초등학교 가장 친했던 수위할아버지와 어린 '나'



오늘은 '시'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었다.


'시'가 주는 짧지만 굵은 힘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정말 정말 이건 너무너무 TMI지만

우리의 직계 조상님 중 국어 수능 지문에 꾸준히 나오시는

시인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의 후예라는 생각 덕에

더??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다.


'시'가 왜 갑자기 떠올랐냐고 물어보신다면


요새, 노래들을 엄청 많이 듣는데,

하도 달고 살다 보니


노래 하나하나가


'시' 같아서 써보고 싶었다.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다...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하기 2일 전,

6-7월 즈음의


꼬마 소녀였던 '나'와

'나'랑 가장 친했던 수위할아버지와 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 9살이니까...

약 17-8년 전의 일일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나는 수의할아버지와 했던

순간순간들이 다 기억난다.


수위할아버지는 늘, 아이들의 등하교에 진심이셨고,

안경 쓴 아이들의

안경을 아주 말끔히 세척해 주시는

만능 수리사였다.


나는 수위할아버지로부터

학교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들과

화단에 있는 작은 꽃들의 이름도 배웠고,


수위할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자연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던 거 같다.


이 글을 볼 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세환이라는 친구랑도 매우 친했었는데,


세환이랑 나랑 가장 좋아했던

수의할아버지였다.


(우연히 보게 되면 답글 달아줘라... 밥이나 먹자.)



그날은 날이 너무 더웠고,


우리 엄마는 그날따라 늦게 오신다 하셔서

수위할아버지의 '집'

작은 '사무실'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밖에서 큰 나뭇잎을 들고 와서

수위할아버지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렸다.


"할아버지, 이거 진짜 크죠 ㅎㅎ

너무 커서 떨어졌나 봐요 하하.."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면서

그날

할아버지는 나한테 물어보셨다.


"우리, 지우는

얼굴도 예뻐

착해

마음도 따뜻해


너는 뭐가 되고 싶니?"



나는 내가 들고 있던 그 큰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저는 시인이 되고 싶은데요.



할아버지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물어보셨다.


"왜, 시인이 되고 싶니?"


"시는 짧은데 강력한 거 같아요."



그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며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지우는 분명, 훌륭한 시인이 될 거야.
시는 너 말대로 짧지만 강력하단다.


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인 것이지.

많이 사랑하고, 많이 관찰해 보렴.

그러면 너는 정말 많은 '시'들을 쏟아낼 것이란다.

그 꿈 접지 마렴."



나는 그 말에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었다.


"히히 당연하죠."


그 대화를 뜬금없이 깬 건

세환이었다.



"할아버지, 저 안경 세척하려 왔습니다 ㅎㅎ"



그렇게 세환이랑 나랑

할아버지의 안경 세척하는 과정을

또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잔잔하게 물 위에

퍼지는 진동파를 보면서


나는 어떤 시인이 되어

주위에 잔잔한 물결파를 던질까

궁금도 하고


그 과정을 보는 게

이상하게 마음도 편안해지고 신기했었다.


그 이후에

나는 일부러 내가 쓴 다양한 시들을


할아버지께 자주 들려주었고,


할아버지와 '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었다.



'시'들의 대부분의 주제는

당연히

'자연'에 관한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나의 방과 후에 함께하는

나의 '시'들의


첫 번째 독자였다.



'시'를 들려드리러 간 거뿐만이 아니라


세환이랑 또 나랑 친했던 친구 몇 명이랑

늘 할아버지 사무실에 들러서 놀고

할아버지는 그런 우리들을 반겨 주셨고,


그렇게 여름이 지났고,


할아버지께서 열심히 낙엽을 치우실 때,

꼭 거기에 빠져야겠다고

퐁당 빠지는

말괄량이 짓도 하면서


할아버지는 우리의 추억들에서

빠질 수 없는

그런 존재이셨다.



그렇게 가을도 지났고,




어느 , 겨울




나는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께서 건강 문제로

더 이상 나오실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고.



할아버지를 매번 기다려도

그 할아버지는 사무실에 안 계셨었다.



나는 겨울이 지나가는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안경 세척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계절은 지나

다시 새싹이 피는 봄이 되어도


수위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24년 08월 16일



그 시절


할아버지의 말씀을 곱씹으면서



지금,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에서야 나는 할아버지의 그 알 수 없는 미소를 알 수 있었다.



첫째로, 할아버지는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그 순수했던 꼬마 소녀도 '시인'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고
둘째로,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내가 커서도
그 순수한 마음 그대로 자라주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랬기에 할아버지는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언질을 주셨던 거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많이 사랑하고

많이 관찰하라


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그게 무슨 말씀이실지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씀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아무리 컸어도


지나가다가 이쁜 꽃을 보고 이쁘다고 말할 수 있고,

숲 속을 걷다가 잎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산들바람이 좋다고 할 수 있다면


아직 우리에게 모두 순수함이 있고,


그 순수함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을 많이 해보고

주위를 돌아보며 많이 관찰하고

아껴줄 때,


다시 그 순수함을


우리의 순간으로



잡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화창한 날, 궁팡에 갔던 날 오디가 호도도독 많이 떨어졌어서 찍어둔 사진.







"야야아아옹"


어, 누구일까


바로 아로다.



'아로'가 관심 가져달라고 할 때

내는 소리이다.


"아로야,

엄마 어릴 때, 시 쓰는 거 진짜 좋아해 가지고


시 써갖고 맨날 자랑하러 가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엄마 시를 정말 좋아해 줬어 그 할아버지는"



'아로'의 표정을 보니

'시'가 뭔지 설명해줘야 할 거 같은 착각이 들어서

고양이 언어로 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시'는


음....


너네도

'이리 와' 이렇게 할 때


'먓아아옹' 이러잖아.


근데, 이게 반복되고

나열이 되고

배치가 되고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뜻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먓아아옹

먓아아아옹

먓아옹"


이러면


뭔가


이리 와

이리 오라고!!


그래, 이리 안 올 거구나


이런 느낌이지??


근데, 어떤 고양이는



이리 와

아, 이리오라니까

좋은 말 할 때 와



이런 느낌으로도 들릴 수 있어



이게 야.



어떤 상황에 따라서

어떤 생각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는데,


신기하게


결국엔 한 가지의 주제로 통할 수도 있는 거야.


어떤 주제로 통할 수도 있냐면


이리 와, 네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하나로 통하기도 하지.



그렇지, 신기하지??


이게 ''야. "





'아로'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르릉 거리며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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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옆에서 자는 아로



할아버지 생각이 난 날


나는

'아로' 옆에서 자면서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할아버지, 저 지우에요.

유지우.


저, 이제 20대 후반이에요.


잘 계시나요??




할아버지, 저 아직도 순수한가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들 때문에


제가 더 자연을 관찰하게 되었고


사소한 물건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거 같아요.




저는 '시인'이 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데요,



제가 준비하고 있는

이 직업 (3d 배경 모델러_VFX 영역) 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과 재미와

영감,

무한한 감동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기술이라 생각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직도 많이 보고 싶어요.



알다시피 저에겐 친할아버지가 안 계셨잖아요.


저에겐 할아버지가

저의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셨어요.


어린 시절, 제 '순수함'을 알아봐 주고


또, 제가 쓴 '시'들도

가만히 앉으셔서


들어주시던 유일한 사람이셨잖아요.


할아버지는 늘, 제게 말씀하셨어요.


너의 '순수함' 때문에

너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셨었죠.

커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더러운 물에서

때로는 옷이 더워졌을 때도 있었고


아직도

가슴에는 정말 많은 멍자국과

칼자국들이 나 있어요.


그래도 제가 왜 앞으로 나아갔을까 생각해 보면


저는 을 이루기 위해서 나아갔고


그리고 그 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이루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니며


은 나침반이었을 뿐이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어떤 영역이 되었든


수많은 '순수함'들을 사수하는

파수꾼,

'시인'이 되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어느덧, 저는

2 마리 고양이들의 엄마가 되었고,


아직은 직장인이 되지 못했지만


professional 하게 제 커리어도 알차게 준비하고 있고요

화장품 잡화점에서 일하면서도 저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답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저는 여전히

'순수함'이 가득한 거 같아요.


그 '순수함'을 잃지 말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할아버지께서 늘 제 시 들어주시고

제 얘기 들어주시고 그러셨던 거겠죠??


할아버지, 오늘 기도는 여기서 마쳐볼게요.


감사하고

사랑하고

행복하세요.



---할아버지의 꼬마 시인 '전활수'올림. 2024. 08. 16. 00:5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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