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려버린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Take#16

by Kate

신호음만 울리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아파트 앞 골목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는 한편

며칠 동안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함 마음도 들었다.


혹시 그에게 전화가 올까

벨소리로 바꿔놓은 후

집으로 올라왔다.


남편 병간호로 며칠 동안

나도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인지

몸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잠시 눈을 붙이려

소파에 성의 없이 얹어져 있는 담요를 배 위에 올린 후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더니 해는 제법 저물어 가려하는데

남편은 땀에 푹 절여져

아직도 쿨쿨 자고 있었다.


머리맡에 올려둔 폰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그였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더 전화를 해봐야겠다 싶어서

화장실 거울을 보며 대충 머리만 만진 후

일층으로 내려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역시나 통화음만 길게 이어질 뿐이었다.


기운이 빠져버려

아파트 계단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지

마치 몇 년은 된 듯한 느낌이지만

막상 따져보면 약 한 달 정도일 뿐이다.


어떠한 감정들을 서로 나누었길래

우리는 이렇게 깊어져 버린 걸까.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었다면..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결혼이란 제도는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법으로 두 사람을 묶어 놓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일 수 있을까.

법으로 묶여 있다고 한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만 바라보고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지나가는 시간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어지는 바람의 방향같이

하염없이 약할 뿐이다.


그렇게 바뀌는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

서로가 서로를.. 손가락질할 수 있는 일일까.


이런 생각들 또한

나와 그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만의 보호본능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 그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려

수만 가지의 생각들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의 끝은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뿐이었다.


그와 나는 현 결혼생활을 깨고

서로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지.. 였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와 많이 피부로 와 닿음을 느낀다.


하긴, 무슨 일이든

직접 느끼지 않는 한 어찌 알 수 있으랴.


보통의 연애와 결혼은 차이가 아주 클 수밖에 없다.


결혼은 가족들이 당사자들 다음으로 연결되어 있고,

법적으로도 묶여 있으며,

결혼 생활을 하며 관계를 맺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갈라섬이라는 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그 모든 사람들과도

연을 끊어내야만 하는 일이다.


몇 안 되는 친한 친구 중 한 명의 부모님은

평생을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 그 사실을 친구에게 들었을 때는

서로 싫어하면 헤어지면 될 것을 왜 저렇게 복잡하게 사나

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의 내가 그 일을 다시 생각해봤을 때는

역시, 결혼을 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헤어짐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 어른들도 쉽지 않았겠지..

완전히 연을 잘라내어 버리는 것은..


내가 없는 나의 남편은.. 어떤 모습일까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님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이혼 후 그렇게 피폐하게 살게 될까.


이기적인 마음이겠지만

헤어지게 된다면 남편은 나보다 더

떵떵거리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이 더 무너지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정도의 고통은 그냥 식은 죽 먹기인 것일까


가끔.. 아니 자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상태 그대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더러운 꼴을 행하고 보게 되어야

비로소 죽을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수만 가지의 생각이 내 뇌리를 거쳐 지나갔다.


그때, 아파트 터줏대감인 할아버지가

작은 낚시용 의자를 들고 내려와 아파트 입구에

턱 하니 앉았다.


잠깐의 눈인사를 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나의 현실이 널브러져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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