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정도 그렇게
그와 함께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 나갔는지
원두가 그라인더에 갈아지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더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옷을 급히 입고 나와 부엌으로 가니
나를 쳐다보며 찡긋 웃는 그다.
"블랙 괜찮죠?"라고 묻는 그에게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고선
따뜻한 커피가 담긴 컵을 받아 들었다.
그와 나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곧 손님이 와도 무리 없이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정리가 잘 된
그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정우 씨는 내가 왜.. 좋아요?"
미처 두 번 생각 하기 도전에
나를 왜 좋아하냐는
사실 평소에도 늘 궁금했던 그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대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음.... 착해요. 지은 씨는 ^^"
착해서 좋다니..
얼마나 댈 이유가 없으면 저런 이유를 드는지..
라고 생각하며
"에이, 그게 뭐야..." 라며
툴툴거렸다.
그런 나를
약간은 멍하고 그렇지만 눈웃음이 서려 있는
눈빛으로 보는 그에게
나는 점점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그와 많은 것을 나누었다.
비록 2-3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비슷한 점이 많은 우리를 발견했고
신기해하기도 또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와 나는 자라온 환경도 입맛도
생각하는 방식도
너무나 비슷했고
굳이 '맞춰나가야 할' 부분 따위 없었다.
그런 그와 내가 함께 있는 시간은
이 큰 우주에 둘 밖에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나는 인생에 실패한 사람도
목표가 없는 사람도
열정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마치 곧장이라도 장맛비를 쏟아부을 듯한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햇살 한줄기가
위태롭지만 꿋꿋이 자라고 있던
얇고 자그마한 들꽃을 찾아
햇빛을 따스하게 내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 햇빛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을 만나 빠지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드라마틱한 이유가 나는 없었다.
평범했지만 불행하지 않은 삶이었다.
불평할 것도 없었다.
조금은 익숙해져 무덤덤해진 결혼생활이 있었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한 친구 몇이 있었다.
-그들에게 이 관계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날, 그를 처음 본 날
나는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펼쳐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잠시라도 시간이 날 때면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문자를 하고
만나지 못할 때는 전화로 서로의 진심을 속삭이는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와 내가 어떤 방식이든 마음의 안전장치를 꽂기도 전에
우리의 감정은 저만치 앞서가 있었고,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와 나는 죽을 걸 알면서도
불만 보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저 서로의 목을 휘감고 안겨서
그 모든 것들이 저절로 없어지리라 믿고 있었다.
브레이크 없이
그저 앞으로만 달리는 서로를 보며
무엇인지 마음 한편이 두려웠지만
미처 그 부분을 돌아볼 새가 없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빠르게
마음이 커져가고 있었다.
평소와 같던 어느 날,
며칠 동안 앓아누워 일을 가지 못하는 남편의
병간호를 하느라
그에게 3일 정도 연락을 하지 못했고
그날이 4일째 날이었다.
'정우 씨, 잘 지내고 있죠? 말했다시피 집에 일이 생겨서 연락을 못했어요. 문자 보는 대로 답장이나 전화 줘요'
문자를 보낸 후에도
한참이 답이 없던 그가 걱정이 되어
밖을 나와 전화를 걸었다.
뚜 - 뚜 -
무의미한 신호음만 계속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