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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유 Oct 12. 2024

예절 바르고 인사를 잘함



“안녕하세요?”     


어릴 적부터 인사는 내게 칭찬의 수단이었다.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것뿐인데 인사를 받은 어른들은 아낌없이 어린 날 칭찬해 주셨다. 더불어 기분 좋은 어른들의 미소도 덤으로 받을 수 있으니 과연 세상에 인사만큼 쉬운 게 있을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수학 공식처럼 복잡하지 않고 머릴 짜 매가며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다. 단순 그 자체. 큰 목소리만 탑재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다. 그러므로 일찍이 내가 내린 결론은 인사는 공부보다 백배는 쉽다였다. 초 중고 생기부에도 자주 이런 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절 바르고 인사를 잘함-     


인사 하나에 예절 바르단 말까지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일찍이 혼자서 우릴 키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 따라 시장에 가는 날엔 물건을 살 때마다 더욱이 열과 성을 다해서 인사했다. 운이 좋은 날엔 내 인사 덕에 나물 한 움큼을 덤으로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서 나름 잘 키워 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엄마 얼굴에 어렸다. 그 얼굴을 보면 집에 돌아오는 내내 큰 효도를 한 것처럼 내 마음에 뿌듯함이 서렸던 기분 좋은 그날의 기억은 모두 인사 덕분이었다.




대표님의 인사 이후 바람대로 난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었고 주변 회사 사람들과도 안면을 텄다. 회사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내 인사를 받은 중년의 주변 회사 대표님은 내 목소리 톤이 좋단 말을 자주 하셨다. 에헴. 그럼 이 목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목소리인데.

오랜 시간 매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 가며 수만 가지 클레임이 발생하는 백화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소리 톤을 경쾌한 솔에 맞추고 최대한 정중하면서도 활기차게. 고귀한 고객님을 위해 만들어진 자본주의 목소리인데 한참 잊고 살다가 여기서 8년 만에 다시 써먹게 될 줄이야.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 속에 섞여 일하는 사람들을 가만 보고 있자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는      


“우리 애가 일찍 일어나잖아요. 저도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이와 한바탕 놀아주고 아이 아침밥을 차리고 등원 준비와 동시에 출근 준비하고 어젯밤 미처 개지 못했던 빨래를 개고 나면 집 안 청소에 설거지를 다 하고서야 집에서 나와요. 한 시간 버스 타고 출근해서 다섯 시에 퇴근하면 또다시 한 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는 바로 아이 픽업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 저녁밥 차리고 집 청소하고 아이 씻기고 그제야 처음 소파에 앉을 수 있어요.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삶을 개척해 나가는 밀도가 부족하달까.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연령대의 많고 많은 사람들의 땀에는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단단함 같은 것들이 묻어있다. 나 역시 더 단단해지려 현장에서 인생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8년 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 아이를 키우느라 고군분투 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땀 냄새를 맡으며 삶의 의지를 불태운 건 어찌 보면 난생처음일지 모른다.

가세가 기울거나 크나큰 시련의 문턱에 다다른 장황한 서사가 없더라도 시간과 환경이 허락한다면 누구나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간다. 나 또한 장황한 서사 따위 존재하지 않지만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땐 뭔지 모를 서글픔에 잠식되어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해도 1시간에 겨우 만 원. 현재 내 값어치를 반영한 숫자란 생각에 점점 더 주눅이 들었다. 사회로의 복귀가 생각만큼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리석었단 걸 깨달았다. 수많은 사람이 시급을 받지만 서글픔 대신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그 노동의 가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값지고 숭고하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깡마른 몸집에 두꺼운 안경을 낀 옆 회사 대리는 인사를 건넬 때마다 항상 수줍게 받는다.

얼굴이 웃상이라 그렇다 할 대화도 나눠 본 적 없지만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저렇게 어리숙해 보여도 대단한 사람이야. 젊은 사람이 투잡 뛰잖아. 새벽까지 쿠팡에서 일하고 30 분자고 다시 회사 출근하고. 요즘 저렇게 건실한 청년이 어디 있어. 내가 봐도 대단해.”     


나이가 지긋하신 옆 회사 반장님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나보다 어린 그 청년이 나보다 훨씬 더 어른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웃상 일지라도 저런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인상 쓰기 마련일 텐데 참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여러 알바 사이트를 뒤져가며 투 잡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내 상황엔 택도 없는 일이란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땐 그냥 찾아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인생의 항로에 대해 말해주기가 껄끄러워진다. 내 인생도 잘 사는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의구심이 드는 이 판국에 누가 누구에게 훈수를 두나. 진즉에 그럴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제발 나부터 잘 살자!! 오늘도 나는 열심히 박스를 접고 테이핑을 친다. 별거 없어 보이는 일 일지라도 무슨 일이건 디테일이 필요하다. 단순히 테이핑을 치는 일도 세세히 들여다보면 체계적인 동작 속에 이뤄진다. 속도전이 필수인 회사에 슬슬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일 출근이 즐겁다. 예전에 이렇게 출근이 즐거웠더라면. 매일 출근길에 기도했다. 내가 많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라도 마음 편히 며칠의 휴가를 즐기고 싶다고!! 예전에 옆 매장에 주말 알바 언니가 출근 전 애들 밥을 챙기고 청소를 하고 나왔단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씻고 출근하는 것도 너무너무너무너무 피곤한데.'   


그랬던 내가 지금은 출근 4시간 전에 일어나서 온갖 일이란 일은 다하고 출근하다니. 내가 엄마가 되어서 소위 말하는 엄마라 강해진 건지. 아님 경력 단절을 겪은 삼십 대 후반의 사고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건지.




예나 지금이나 느끼는 거지만 일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건 딱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로 어느 정도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눈치와 센스.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닌 사람은 흔히 말하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두세 개를 아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두세 개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 거기에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사람이라면 알바라는 드넓은 초원에서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는 맹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약한 들짐승 말고 맹수가 되기 위해 묵묵히 포효하며 경험을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내가 되어도 매일 저녁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있길 바라며.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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