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Jul 11. 2023

우리(we) 집

할아버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미쳐갔다. 나중에는 층간소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층간소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 물론 나도 소심한 복수를 하긴 했었다.


처음에 나는 순진하게도 아랫집 어르신들께서 티비를 켠 채로 주무시니 이를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한마디로 ‘시간이 늦었으니 거 티비 좀 끕시다!’ 하고 시그널을 줘야겠단 얘기다.


새벽에 초인종을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윗집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발을 쿵쿵 굴렀다. 짧고 절도 있게 쿵쿵 두 번. 층간소음에 대응하는 층간소음이랄까? 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내 발망치 소리가 너무 작은가 하여 남편의 발을 빌려 쿵쿵하고 역시나 짧고 굵은 신호를 보내 보았다.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귀가 안 들리셔서 티비 소리도 저렇게 크게 틀고 보시는 분들인데 내 시그널이 들릴 리 없었다. 과연 티비 소리에 묻혀 들리기는 했을까.


우리는 결국 항복하고 안방을 폐쇄했다. 그리고 거실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달콤한 신혼생활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렇게 아랫집 할아버지와의 악연이 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내가 이런 글을 적는 일도 없었겠지? 아랫집 할아버지는 층간소음 말고도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는데 바로 ‘흡연’이었다.


참고로 나는 비흡연자이고 남편 또한 비흡연자이다. 양가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비흡연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담배 냄새를 못 참는 편이다. 특히 내 집안에 나는 담배 냄새를 못 참는 편이다.


운이 좋게도(?) 그동안 살았던 집들은 이웃들을 잘 만나 이런 문제로 고생한 적 없이 살아왔다. 그런 내게 아랫집 할아버지는 존재 자체가 지옥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기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굉장히 적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11시 즈음이었을까?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코를 의심했지만 어느새 집안에 가득 퍼졌다. 집도 작았기에 냄새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무슨 일인고 하니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화장실은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매캐했다. 그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대체 이 냄새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직장인인 나는 알아내기 어려웠고 그로부터 한 달 정도 뒤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정말 우연히 아랫집 할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창문을 모두 닫은 채 베란다에 서서 피우고 계셨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물론 다른 집일 가능성도 있다. 아파트 특성상 여러 집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특정 한 집이라고 지목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위층과 바로 그 위층에서 흡연하지 않으신다는 대답을 들었다. 더욱이 바로 위층은 아이를 키우고 있어 나만큼이나 담배냄새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그렇담 범인은 바로 하나!










내가 살던 아파트는 오래된 구축으로,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곳이라 그동안 실내흡연은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던 것 같았다.


왜 어른들 중에 간혹 그런 분들 계시지 않는가. ‘내 집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담배도 못 피워?’ 하는 분. 애석하게도 아랫집 할아버지가 그랬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던가. 그러나 나는 못 떠났다. 아직 새로 한 벽지도 마르지 않은 걸...

이대로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게다가 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내 감정과는 달리 우리 집은 어느새 아랫집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우리(we) 집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랫집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