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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ul 07. 2023

아랫집 할아버지

빌런의 등장

입주와 동시에 우리를 반긴 건 뻥뻥 뚫린 집이었다.

달콤한 나의 신혼집은 어딘지 허술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문손잡이가 안 달려 있다던가, 화장실 환풍기 구멍이 뚫려 있다던가, 화재경보기가 선만 연결된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우리 부부는 지나치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라서 이 상황에 대해 싫은 소리 한번을 하지 못하고 상황을 일단락했다. 아, 물론 우리는 이 집에 살아야 하니 둘이서 야금야금 보수하며 지냈다.


그래도 우리는 신혼이었다. 이런 일쯤은 별일 아니라며 웃어넘기려 노력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자며 앞으로 우리 인생에 꽃길만 펼쳐질 거라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날 새벽. 내 달콤한 신혼은 산산조각 났다.










새벽 1시.

잠에 들려고 안방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잠드려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월 29,900원!”


잘못 들었나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의심이 무색하게 너무도 또렷하게 텔레비전 속 광고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험 광고 소리가 계속해서 방안에 울렸다.


우리 집 TV는 분명히 꺼져있는데 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걸까. 아랫집? 윗집? 양 옆집?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벽마다 귀를 대며 들어 보았다. 정답은 바로 아랫집이었다!


오래된 구옥이니 충간소음은 피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고 이해해 보자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새벽 3시까지 계속되는 소음에 나는 평점심을 잃었다.










다음 날, 나는 아랫집을 찾아갔다.

층간소음으로 화가 단단히 난 나였지만, 한 손에는 시댁에서 받아 온 양배추를 들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부부는 지나치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아무튼 나는 아랫집 벨을 누르고 아랫집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수수한 여느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양배추를 건네며 새로 이사 왔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지난밤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커 밤새 괴로웠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 남편이 편마비가 왔어요. 그래서 한쪽 귀가 안 들려요. 그래서 티비 소리를 크-게 해놓고 봐요. 미안해요. 어쩌나.”


왜인지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편마비로 인한 거라고 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이해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텔레비전 소리가 계속 됐다.


문제는 늦은 밤이면 소리를 줄이거나 꺼야 하는데 새벽 3~4시까지 계속된다는 거다. 켜둔 채로 잠이 드시는 건지 정말로 그때까지 시청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벽까지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꼭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중국 드라마나 보험광고 같은 것들. 특히 그중에서 보험광고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는데, 쏘아대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반복되는 문구들로 계속 듣고 있으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원체 예민하고 소리에 민감한 사람인지라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귀마개를 해봐도 소용이 없고, 몇 번 더 찾아가 부탁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찾아 간 나를 귀찮아하시며 자길 이해 못 해주는 나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결국 나는 그렇게 점점 미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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