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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Sep 08. 2015

가까이 다가와줘요, 어서

#3 James Joyce <Ulysses> 연약함, 그 탁월함에 대해

Touch me. Soft eyes.

Soft soft soft hand.

I am lonely here.

O, touch me soon, now.

What is that word known to all men?

I am quite here alone.

Sad too. Touch, Touch me.


-James Joyce <Ulysses>


가까이 다가와줘요. 부드러운 눈길로.

아주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나는 지금 여기서 외롭답니다.

가까이 다가와줘요, 어서. 지금 말이에요.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 있지요. 그게 무언지 아세요?

나는 지금 정말 외롭답니다.

쓸쓸하기도 하구요. 가까이 다가와줘요.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중.


by ryong,  2015,  Sony A6000


사진가 김문호 선생님이 올린 글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Ulysses>의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날카로운 인상의 원로 사진가로 기억하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와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읽으라고 하셨었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은 냉소적인 독설로 가득 차 있었다.

마루야마 겐지를 인상 깊게 읽는 사진가를 멈추게 한 구절.

이 구절은 그래서 더 와 닿았다.  


남자, 절대적인 젠더 개념이라기보다는 '남자'로 대표되는 강함을 과시하고 유지해야 하는

존재들 내면에 자리한 연약함을 간단한 몇 단어로 모두 끌어내는 탁월함이 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꽁꽁 감춰놓은

약한 자아. 여린 감성. 지친 내면.

위태로운 자아가 시인의 음성에  무장 해제된다.


작가는 '언제나 강할 것'이라는 지배적인 침묵의 원칙을 포기했고

자기 방어 안에서 앙상하게 버티고 있는 팔다리와

애정에 굶주린 애처로운 눈동자로 안아달라고 애원한다.


by ryong, 2015, Sony A6000


발가벗고 약점을 노출하는 주체를 비웃을 이는 없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겁쟁이에게는

섣부른 동정만 피상적으로 오고 가겠지만

구원을 원하는 슬픈 존재에게는 진심 어린 연민과 공감을 나눌 수 있다.


누군가의 굳센 아버지, 믿음직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 같은 작가는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새벽 무너져 내렸을 테고,

그 결과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했을 테고, 이 구절을 얻었을 테다.


눈물은 여느 물처럼 생명의 길이 된다.
그 흐름 안에서 순환해야 살아갈 수 있다.


모두 잘 알고 있듯 강한 척 할수록 속은 여리고 미성숙하다.

약함을 인정해야 정말 강하다는 뻔한 말도 작가는 울림으로 만든다.

솔직한 언어는 울림을 준다. 진짜 얘기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진심을 못 들어줄 만큼 피로한 영혼도 없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감정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감정의 풍파에 휘청거리다

급기야 무릎을 꿇고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에게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우선 무리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런데,

확고한 정신에 따라 살아가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날도 있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원초적인 갈망, 유아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 

오늘은 불안하게 찍힌 사진처럼 그런 날이었다.

그렇지만 미숙한 존재만이 성장하고 나아가니까

이 순간 또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지금 약하고 어릴수록 더 나아질 수 있으니까

오늘은 울고 인정하고, 내일 나아가면 된다.


by ryong, 2015, Sony A6000


그래도 감성팔이가 못마땅하다는 이들은

오늘만큼은 예의를 갖추자.

시도 때도 없이 이러지는 않을 테니까.

내일은 다시 각자의 역할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야 할 테니까.


"So, Touch me softly. darling!"


그러니까, 오늘만은 날 어루만져줘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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