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막스자콥 <지평선>
지평선 / 막스자콥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이 짧은 문장이 상기시키는 정서는
눈에 보이듯 선명하다.
그 하이얀 팔에 설레었고, 네 모습에서 세상을 보았을 때.
네가 내 세계이고, 세상이 너였을 때.
네가 내 전부였을 때.
그리고 이 도취상태를 안타깝게 자각시키는 과거형의 말미.
그럼에도 시는 희망적이다.
전부'였었기' 때문에.
시인에게는, 우리에게는 그녀만이 눈에 비쳤던
환상체험의 기억이 있고, 그 경험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녀를 잃고 더 이상 지평선이 그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 때
다른 것들로 채워진 지금, 눈을 감으면 그때를 떠올릴 수 있고
눈을 뜨면 다른 세상 또한 펼쳐져 있다.
지금 그녀는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
한 때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 없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간다.
믿어왔던 세계의 전부가 무너지는 경험은 필히 고통스럽다.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가 하나의 세계였던 알을 깨트리는 투쟁이다.
이제 지평선은 더 이상 그녀의 팔이 아니다.
깨트렸던 무수히 많은 세계, 전복되었던 감정과 이유들.
그 이야기가 모여 지금 바라보는 지평선을 이룬다.
그때는 좀 더 단순했고, 벅찼고, 기적 같았다.
하얗고 초현실적이었던 너로 이루어진 지평선.
지금은 쌓여버린 이야기들이 풍경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이 풍경도 나쁘지 않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던 그 환희의 시간은 아니지만
느긋하게 언제든 몇 시간이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너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