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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Sep 18. 2015

더 없이 순수한 움직임

#5.  우영창 <확고한 움직임> 

확고한 움직임 / 우영창

이 세계의 질서에

강자의 패권에 편입되지 않는

확고한 움직임을
나는 너의
뜻 없는 분주함 속에서 보았다
아가야


by ryong, 2013, Sony A57
by ryong, 2013, Sony A57


3살 때부터 책을 혼자 읽고, 지금은 한자를 줄줄 외는 아이.

초등학교 6학년 작은 오빠의 한자 학습지에서

틀린 걸 찾아내며 '아 이거도 틀렸다' 키득대는,

아이 치고는 고약한 성격의 너를 보며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레 생긴 여동생이다.

이 아이가 태어난지 1년도 안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난 고등학교 3학년이 시작되며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기는 2살 때였다.


입시를 준비했던 나는 아기를 돌보아줄 겨를은 없었다.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고 1달에 한 번 찾아가는 집에서

단지 귀엽게 여겼을 뿐이었다.


입시가 끝나고 신입생의 들뜬 생활도 가라앉았을 때  

드디어 너를 바로 쳐다보게 되었고

그 '확고한' 존재를 느꼈다.


네가 엄마를 사랑해주어 좋았다. 꼭 껴안아주는 그 움직임이 좋았다.

존재 자체로 너는 가족의 기쁨이 되었고, 이유가 되었다.

일그러진 가족사는 온전히 새로 쓰여졌고

넌 우리 가족의 새로운 '질서'였다.


추상을 그리듯 낙서를 했고, 괴테를 읽는 표정으로 동화책을  읽어내려 갔다.

노래가 흐르면 함께 춤을 추자고 달려들었고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새침한 표정도 지어 보일 줄 알았다.

너는 늘 시끄럽고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모습에서

우리도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었다.


by ryong, 2013, Sony A57


안다. 그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좋아해주면 좀 더 기뻐할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행동은 시선에 의해 의도와 분리된다.

편견과 의도를 배제하고 행동 그 자체만을 보았을 때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움직임이란 건 순수하다. 

흐려질 필요가 없이 그대로 보아야 하는 유아적 순수함이 있다.

그리고 순수함은 '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것이기에

초월적이며,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확고한' 것이다.


너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고,

나도 한때는 그랬고 모두 그러했을 테다.

아이는 태어나고 자라나며 어른의 세계, 

그 '강자의 패권'에  편입되어 가는 세상을 뒤흔드는 계기가 된다.

'아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상 지구는 안녕할 테다.

이 순환이 우주의 법칙이라 참 다행이다.

  

by ryong, 2013, Sony A57


아이의 뜻 없는 분주함 속에서도 어른은 확고한 움직임을 느낀다.

네가 모르는 너의 아름다움이 있다.

너로 인해 세상도 분명히 아름다워진다.

그러니까 자각하지 못한 존재의 숭고함이

깃들어있다는 것을 조금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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