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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뻥"

by 들레

“야 은미야. 중3 때 네가 차렷 경례 구령을 하는데 물상선생님과 너의 오고 가는 애절한 눈빛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때 나는 가슴 깊은 곳 꼭꼭 숨겨둔 바위같이 딱딱한 설렘이 갑자기 바위를 “뻥” 뚫고 화산같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뜨거운 용암이 흘려내려 가슴이 환하며 시원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원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는 풀어헤쳐진 해방감이었다.

나도 그때의 스파크를 기억한다. 그것은 고전명작 로맨스 영화 “ 카사블랑카”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우수에 찬 눈동자와 같은 것이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35년이란 세월이 지난 어느 해, 여고 총동창회를 한다고 전국에서 모여 큰 잔치를 하는 날,

중학교 동창에서 같은 여고로 진학한 한 친구가 한 말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1.

나의 중학시절은 한 학년이 3반으로 이루어진 시 소재지에 있는 기독교교육재단이 설립한 사립중학교였다. 시내 중앙에 있던 집하 고는 꽤나 먼 거리였기에 나는 30여분을 걸어서 다녀 힘들었지만 기독재단이라는 점에서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 뺑뺑이를 돌려 이 학교로 떨어졌을 때 작은오빠는 학교 뒷담은 엉성한 블록으로 구멍이 많이 있는데 그 구멍으로 보면 시체들이 타면서 “저 푸른 초원 위에 춤을 춘다”라고 뻥을 치며 놀려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다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뒷산을 몇 개 지나면 화장장이 있다고 한다.

1학년 때부터 1반 27번으로 3학년까지 쭈욱 갔었는데 27번은 성씨의 가나다 순으로 정해졌으며 공부를 조금 한다는 특수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교내 영어 암송대회에 몇몇이 반대표로 나가는데 나도 포함이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남자 고등학교 학생부장이면서 영어교사로 꽤나 지역에서 유명했기에 당연히 딸은 영어를 잘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미루다가 딱 닥치면 후다닥 하는 성격인지라 암송대회 전날에 밤늦게 외워서 단상에 올랐는데 쳐다본 하늘은 파랗고 발아래는 까만 머리에 하얀 벌레들이 쪼물쪼물거린다는 생각에 영어동화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책을 읽고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나는 영어는 듣는 영어로 말하는 영어는 안녕하며 지내게 되었다.

큰오빠는 대구명문고를 다녀서 할머니와 자취를 하였고 작은 오빠는 나와 같은 재단의 남자 중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는 대구로 진학한다고 학원에 보내며 공부를 독려했지만 나는 물론 부모님도 나의 진학과 공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특히 3학년때는 할머니와 동생하고 살아서 조용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다.


3학년 때 대학을 갓 졸업한 세분의 남자 선생님들이 오셨다. 선생님들은 훤칠한 키에 말씀도 재미있게 하여 깔깔거리는 여중생들의 마음을 흔드는 데는 충분한 매력들이 있었다. 그중 역사선생님은 여교사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고 국어선생님은 깡마른 체격에 숨어서 담배만 피우고 다닌다는 소문이, 물상 선생님 권 oo은 수려한 외모에 멋과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셨다. 나는 물상선생님의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색, 멋있게 수업하는 모습에 설레기 시작했다.

권 선생님이 나온 공주사범대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며 이름으로 궁합 맞추기 놀이도 하며 설레는 마음을 달랬다. 어느 날 친구들이 물상선생님에 대해 소곤거리는 이야기가 내 귀에는 더 크게 들렸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중 “자취방에 놀러 갔더니 빵을 사주어서 먹고 왔다”는 말에 “모두 선생님을 좋아하는구나, 선생님 집에 찾아가는 것은 안 되는 일”인데,라고 생각하며 나의 짝사랑 마음을 꽁꽁 숨기고 졸업을 하였다.

2.

가슴 “뻥” 이 터진 날 이후부터 나는 비실비실 웃으며 직장 둉료들과 여고동창들에게 나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든 첫사랑 스파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권 선생님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인인 친구가 인근도시에서 선생님으로 퇴직하여 지금은 서울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선생님은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어 가끔 만난다는 이야기에 나는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고 부탁하니 다른 친구들도 좋아했었다며 같이 만나자고 의견을 모아 온다.

“어떻게 변했을까. 기억은 하고 계실까?” 궁금한 마음에 급히 인터넷 검색하니 선생님의 시와 사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수수하니 담백하게 악의 없이 조용히 미소 짓는 지금의 모습을 한 사진에서 예전의 모습이 살짝 보이 기도 하였다. 나는 한집에 사는 옆지기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선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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