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보수성이 강한 기독교집안의 3남 2녀의 장녀이다. 교회학교, 중고등부학생회, 교회학교 교사 및 성가대 생활, 결혼상대자도 기독교인으로 선택해야 하는 뼛속까지 기독교 정신이 배어져 있는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항상 성경말씀과 교리에 매어 단정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면서 교회를 통하여 작은 사회생활을 해오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학창 시절 읽은 한 산문집과 중학교 때 본 영화와 고전명작이 종교적 생활에서의 이탈과 해방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DNA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도의 어느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 여행을 즐겨 다니는 손자에게
”애야 이번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구나. “
”할머니, 침대 위에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
중학교 때 단체 영화 관람으로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명장면 테라농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스켈렛 오하라의 명언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알을 부수어야 한다.”
데미안의 명언이 그것들이다. 그 당시 본 영화와 산문집, 고전명작들은 운명에 대응하며 자기의 정체감을 알아가고 여행의 즐거움과 종교에 대하여 깊이 알고 싶다는 욕구를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1. 고등학교 3학년 무더운 여름
”야 은미야. 우리 학교는 예전부터 3학년 1반만 내려오는 전통이 있는데 종합고등학교 보통과 애들과 단체 미팅하는 것이거든 다음 주 일요일 하기로 했으니 너도 같이 가자 “
반장의 설득에 ”그래 좋아, 전통이라니 한번 해 볼게 “
우린 3학년이 3 학급으로 180여 명 정도 있는 학교인데 종합고등학교 대학진학반인 보통과 30여 명과 미팅머리수가 맞아야 한다 하니 또 전통을 지켜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신청했다. 그러나 그날이 일요일이며 예배당에 안 가고 미팅에 참석한다는 것에 후회하며 며칠을 걱정과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남학생에 대한 궁금증이 크지 않았기에 반장에게 참석 안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교회학교 중고등부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며 남학생들과 어울려 수련회와 등산 등 야외행사를 진행했었고, 작년에는 아무도 모르게 007 그룹미팅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 식사자리에서 아버지는 ”은 미야 너도 오늘 그 자리에 나가니 “하는 것이었다.
”흡, 아니요 전 안 나가요. “ 가슴이 ”쿵 “ 하고 내려앉았다.
”어떻게 아셨지 “ 아버지의 물음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쓸 겨를도 없이 시간은 흘려갔다.
친구 30여 명은 시내버스 차고지에서 버스에 승차 흑석사라는 사찰에 도착하니 남학생들이 미리 와 있었다고 한다. 60여 명은 둥글게 모여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쉽게 짝 맞추기 게임을 하던 중에 종합고등학교와 여고 선생님들 10명이 들이닥쳤단다. 당황하여 도망치려 했으나 둥글게 모여 있는 상황이라 고스란히 그 자리에 앉아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단다. 그때부터 매타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고 학생 부장이던 아버지는 여학생들을 ”엎드려뻗쳐 “ 하고는 나무 회초리가 몇 개가 부러져 나가도록 엉덩이를 하늘이 노래지도록 무척 때렸다고 한다. 그리곤 시내버스 타고 되돌아오지 못하고 흑석사에서 산 능선을 십여 개 넘어 아픈 엉덩이를 서로 밀고 당겨가며 원망과 속상함 한가득 품고 각자의 학교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학교에서 처벌이 어떻게 내려질지가 더 큰 걱정으로 남아있었다. 다행히 아무런 처벌 없이 쉬쉬하면서 지나가게 되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흰 바지 실밥이 터져 친구 옷을 빌려 입고 산 능선을 넘었다고 하고 며칠을 절룩이며 걸어도 부모님께 알리지도 못하며 멍 던 엉덩이를 찜질했다고 속상함을 이야기했다. 단체미팅 정보가 어떻게 흘려 나갔는지 궁금해하던 친구들은 나를 오해하였다. 어떤 친구는 ”은 미야 네가 그날 참석했으면 너는 뼈도 못 추렸을 꺼라 “며 위로와 다행이라는 말도 하였다. 나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이 침묵만이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배들은 삼삼오오 시내버스를 나누어서 타고 흑석사에 모여서 소리 소문도 없이 행사를 무사히 마쳤었는데 우리 기수대표들은 잘해보겠다고 시내버스를 예약한 것이 정보형사에게 전달되고 또 각 학교 학생부장에게 전달되었던 것이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 여고 동창모임에서 한 친구가 그때의 오해를 말하였다. 다른 친구들이 시내버스 임차가 원인이었다고 다시 밝혀서 우리는 웃음으로 추억을 되새겼다.
그 당시 기자들이 알았으면 특종 감으로 학교의 망신과 학생지도에 구멍이 보이는 큰 사건이 될 뻔하였다.
2. 몰래한 007 그룹미팅
여고시절 나는 4명의 친구들과 똘똘 뭉쳐서 다녔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한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교회생활 학교생활을 하며 사춘기를 방황이라는 것도 겪어 보지도 못하고 슬쩍 지나갔다. 한 교실 한 반에서 깔깔거리며 다니니 ”애 은미야 너 네들이 깔깔거려 학교 천정이 날아가겠다 “라는 선생님의 핀잔소리를 들어가며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아갔다.
시험공부를 한다며 한 친구 집에 모여서 떡볶이를 먼저 해 먹고 밤새기를 하였더니 나중에 그 친구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고추장 한 단지를 별도로 장만해 주셨다.
고3 시절 자율학습 시간에는 포도밭 투어를 다니며 ”1초에 포도 몇 알을 먹는가? “를 내기하여 꼴찌 친구가 포도 값을 부담하게 하였다. 오랜 세월 후에 직장에서 그 포도 농가를 방문하여 여고시절 포도밭 투어로 맺은 인연을 이야기하며 그 부인과는 지금도 가끔씩 만나고 있다.
비밀이 정말 보장되는 이런 친구들과 007 미팅을 하게 되었다. 주선을 하는 친구는 사돈총각(새언니의 남동생)이 미팅을 하자고 하여 고민이라고 의논해서 우리는 고2학년이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은 종합고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들이었다. 모든 계획은 우리가 짜고 그들은 따라오기로 했다. 먼저 만나는 장소와 각자의 모습을 모르니 특징을 정해놓고 제비 뽑기를 하기로 했다. 우체국계단에서 만나는 팀은 ”신발한쪽 신지 않기 “ 서점에서 만나는 팀은 ”책을 뺏다 꼽았다 반복하기 “ 초등학교 회전지구대에서 만나는 팀은 ”회전지구대를 뱅글뱅글 돌리며 타기 “, 분수대에서 만나는 팀은 ”바지한쪽 접어 올리기 “ 등 이렇게 네 장소를 정하고 제비 뽑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으로 한참을 서성거렸을 생각을 하니 ”참 순진한 발상이었구나 “웃음이 절로 난다. 그리고 만나게 되면 걸어서 유명한 중국집에 저녁시간까지 모이도록 약속을 했다. 나는 우체국계단에서 만나는 종이를 뽑게 되었다. 우체국에서 만나 저녁 먹는 장소까지는 시내를 지나야 하는데 그 당시 모르는 학생과 시내를 같이 다니다가 ”아는 사람이 도 만나면 어떻게 할까? 뭐라고 변명할까? “ 머리를 굴리며 걱정했지만 이내 잊어버릴 수 있었다. 설레 임은 커 녕 무덤덤함만 기억난다. 지금은 어떤 모습의 학생인지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팅 팀은 경회루라는 중국집 2층 골방에 모였다. 삐걱거리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친구 몇 명 벌써 노닥거리고 있었다.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 먹고 각자 장래 희망사항을 말하였다. 그중 튼실한 몸에 예리하게 생긴 한 학생은 중앙정보부에 예비로 다니고 있는데 적성이 맞다고 한다. 한 남학생은 큰 목장주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35년이 지난 어느 해 직장동료의 말에 의하면 말을 타고 다니며 수백 마리의 소를 관리하는 목장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군가 궁금해서 방문했더니 큰 목장주가 되겠다는 말했던 친구의 사돈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