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13
대학생 시절, 나는 한 도시의 보건소로 실습을 가게 된다. '지역사회 간호학'이라는 과목의 실습이었다. 병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에도 간호사가 존재한다. 현대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지역 노인분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간호를 제공하는 직업, 지역사회 간호사라고 한다. 나는 지역사회 간호사 선생님을 보며 어쩌면 나의 적성에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보다는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한정된 공간 속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 끔찍했기 때문이다.
간호사 선생님의 차에 탑승 후 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들렀던 곳은 한 마을의 회관이었다. 그곳의 분들은 다들 나이가 지긋하셨다. 노인 밖에 없던 마을에 유일한 젊은 남자였던 나는 마치 스타 트로트 가수가 된냥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배가 터지도록 간식과 음료수를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정말 감사했다. 실습하랴 당이 떨어졌던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복스럽게 음식들을 먹었다. 그런 모습을 또 좋아해 주셨다. 나는 노인분들의 체온, 혈압 등을 측정하고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오면 따로 체크를 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다행히도 다들 나이가 있으셨지만 건강한 수치가 나왔다. 약 30분 정도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한눈에 봐도 낙후되어 보이는 동네였다. 상가 건물들은 마치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간판은 낡고 오래되었으며 건물의 외벽에는 금이 가있었다. 방금 들렀던 시골 마을은 자연과 가깝고 공기가 맑은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먼지에 취약한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자주 기침을 해야 했다.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행인들이 많았다. 나와 선생님은 한 건물로 들어갔다.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나는 이 집이 마치 폐가처럼 보였다. 멀쩡해야 할 창문이 깨져있기도 했고, 바닥에는 장판이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구석에는 많은 컵라면 용기들과 빈 소주병이 쌓여있었다. 이때, 어두운 방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약 6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분이 바로 간호를 제공해야 할 대상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조현병 진단을 받았었다. 조현병은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며 관리해야 할 질환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는 안타깝게도 질환을 관리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살아가며 많은 문제들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과 친해 보였다. 상당히 호의적이었으며 집에 내놓을 것이 없다며 미안하다고 멋쩍게 웃는 얼굴이 기억난다. 그가 입고 있던 바지에는 먼지와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낡은 옷이었다. 선생님은 그를 바라보며 정부에서 지원금을 못 받는 현실이 매번 안타까웠다고 한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을 상속받았는데, 그것이 잡혀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건물을 처분하려고 해 봤지만, 해당 지역과 건물 자체의 낙후 때문에 잘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말 그대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 날 나는 약 8군데의 집을 돌아다녔지만, 이분이 가장 안타까웠다. 가장 어렵게 사는 분이었다. 당시 초겨울의 날씨였는데, 집 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추웠던 기억이 있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의 상황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만약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안식처와 일정 부분의 지원금을 매달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속 재산 중에 건물이 있어서 모두 허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잠시 그의 집을 돌아다녔다. 집의 모든 바닥은 전부 시멘트 바닥이었다. 집에는 냉장고도 없었으며 심지어 온수조차 나오지 않았다. 침구류에는 악취가 났다. 얼룩이 많은 이불을 가리키며 혹시 세탁은 어떻게 하고 계시냐 질문했지만, 그는 또다시 멋쩍게 웃으며 집에 세탁기가 없어서 세탁은 거의 못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주로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질문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소주병과 컵라면 용기를 가리키며 매 끼니마다 소주와 라면으로 해결한다고 답했다. 이 모든 상황이 안타까웠다.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최악의 환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선생님께서는 그의 건강상태를 간단히 체크하시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고독을 위로했다.
나는 그의 집을 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어렸을 적 집이 정말 어려웠다. 원룸 크기의 작은 집에 어머니, 나, 남동생이 살았었다. 내가 살던 집은 정리가 전혀 안 돼있었다. 편하게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집이 어질러져 있었다.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어서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대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콤플렉스였다.
그의 모습과 그가 살고 있는 집, 그것은 마치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과 열등감, 당시 느껴졌던 불안감 등이 떠올랐다. 일이 끝나고 선생님 차에 올라타며 보건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렵게 살고 있는 그에게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복잡한 과거의 공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공포의 정체는 가난으로 비롯된 공포였을 것이다. 가난은 나를 구차하고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미래에 대해 희망이 아닌 불안을 품게 만들었고, 나의 꿈을 이룬 사람에 대해 존경과 의지를 품는 게 아닌, 열등과 질투를 품게 만들었다. 나는 망가진 자아를 고치기 위해 어렵게 노력해 왔다.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지나왔던 어두운 나의 과거가 떠올라, 차 안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올라온 감정을 가라앉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