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12
인턴쉽 실습을 하면서 알코올 중독 환자분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알코올 중독은 치료하기가 정말 까다로운 질환이다.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 환자분들은 반복적인 재입원 과정을 거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혹시 바닥에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이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참고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등장하는 구 씨 캐릭터가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 환자이다. 이렇듯 알코올 중독 환자는 집에 자신이 마신 술병들을 마치 진열하듯 바닥에 늘어놓는다. 흔히 볼 수 있는 알코올 중독 환자의 행동이다.
알코올 중독은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다양한 종류의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데, 개인의 의지 영역에서 컨트롤할 수 없다. 그래서 마치 피를 주기적으로 마셔야 하는 뱀파이어처럼 술을 수시로 복용하게 된다. 금단증상의 종류는 다양하다. 불안, 불면 증상부터 시작하여 진전(손 떨림), 구토, 발한 및 심하면 환각, 환청, 섬망 증상까지 사람마다 보이는 금단 증상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가장 많이 관찰되었던 알코올 금단 증상은 진전, 발한, 불안 증상이었다. 하지만 환자분의 나이, 중독의 심각도에 따라 환각과 섬망 증상도 간혹 관찰되곤 하였다.
내가 만났던 알코올 중독 환자분께서는 병원에 재입원 과정을 약 10년 정도 반복하셨던 분이었다. 사실 10년이라는 기간이 긴 시간인 것은 맞지만, 알코올 중독 치료가 그만큼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수준은 아니었다. 이분은 다행히 치료를 위한 병동 내 프로그램에 협조적이셨다. 메모도 하시면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래전 사업이 망하고 가족과 떨어지게 되면서 술에 의존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치기 위해 그는 매일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술을 먹고 사람과 싸우거나 음주운전을 하여 경찰서에 가게 되는 등 다양한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는 술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치료를 진행하며 가장 뜻깊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는 AA 자조모임이 뜻깊었다고 답했다. AA자조 모임이란, Alcoholics Anonymous의 약자로 알코올 중독 환자들끼리 자리에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치료를 위해 금주와 회복과정을 돕는 모임을 말한다. 그는 주기적으로 AA 자조모임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모임에서 그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힘든 치료과정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금주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나는 그와 면담을 종료한 뒤 AA 자조모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인턴쉽 실습 2주 차에 나의 호기심을 해결해 줄 일이 생겼다. 그 주의 수요일에 병원에서 진행하는 AA 자조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자조모임이 어떻게 진행되며 사람들이 그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조 모임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속내를 말하기 시작했다. 금주를 하는 동안 있었던 사건들, 괴로웠던 마음들, 음주에 빠지게 된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중에서는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표정의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코올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알코올 중독 치료과정의 어려움 등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모임이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는 시간이 끝나고, 병원에서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을 호명하며 상장을 수여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지난 몇 년 간 금주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 었다. 상을 받는 분들 중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어떤 할아버지셨는데,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을 앓으며 술문제로 가족들에게 폭력을 자주 행사했다고 한다. 그는 심각성을 느끼고 치료를 시작하여 지난 10년간 금주에 성공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상을 받으며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그는 요즘엔 딸들과 아내에게 조금은 떳떳한 아버지, 남편이 된 것 같다며 감사하다고 소감을 마쳤다. 다행인 것은 금주를 지속하며 가족들과의 관계도 점점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날 실습을 마치고 셔틀버스에 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알코올 중독, 나의 주변엔 다행히 알코올 중독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던가,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나 또한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치료의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마지막으로 삶을 살아가며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술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한 방식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