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울이 친구인 삶을 아시나요?

저는 압니다.

by 먼산

우울함.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감정이 없는 삶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한 감정입니다. 저는 대개의 경우 우울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스스로 우울한 상태라는 걸 모르는 채로 늘 우울했고요. 조금 크고 나서는 그걸 알고서도 그냥 그대로 우울했습니다. 더 큰 후부터 지금까지는, 우울하지 않으면 굉장히 이상하다고 느낄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없는 상태를 겪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 상태로 돌아가겠습니까.


인간에게 필요한 탄성력이라는 거. 저한테도 없는 건 아닐 텐데요. 그 탄성력이라는 게 성립하려면 ‘원상태’ 라는 게 존재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제가 인식하는 저의 ‘원상태’는 늘 우울한 상태였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 탄성력이 나름 괜찮은 거 아닐까요? 다만 방향이 좀 이상해졌을 뿐인 거죠.


아무튼 그래서요. 우울감이 기반이 되지 않은 사고방식은 굉장히 어색하구요, 우울은 저한테 대기 같은 것입니다. 물론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사람의 기본이 우울일 수 있겠어. 언젠가는 이게 조금 없어지고, 가끔은 전혀 안 느껴지고, 대개 평온하고 안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날이 나에게도 오겠지. 그런 기대를 섣불리 했더랬죠. 그래서 그 기대가 극에 달했을 때는, 언젠가 과거 나의 은사님을 만난다면, ‘선생님, 아직 괜찮지는 않지만, 언제가는 괜찮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라고 자신있게 말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죠. 뭐 그 다짐이야 금방 깨어졌죠 당연히.


그런데 말이죠, 이 우울함을 계속 친구로 데리고 산다는 게 참… 더럽게 힘들긴 하거든요? 일단 힘이 없어요 힘이. 누구를 애정할래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도,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힘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얘랑 친구로 지내고 살면 일단 기본적으로 지향점이 에너지가 바닥인 쪽으로 가게 되거든요. 그 신체적인 체력이랑 완전 별개인 건 아니겠지만, 또 별개일 때도 많아요. 아 뭔가 되게 횡설수설하게 되는데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뭔가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게 만드는 게 있어요.


비유하자면 뭐랄까요, 다른 사람들은 에너지 게이지가 0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저는 -100부터 시작해서 훨씬 많이 채워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저한테 왜 그렇게 맨날 무기력하냐고 하는 말을 들으면 거기에 니가 뭐 보태준 거나 있냐 화낼 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거죠. 뭐… 익숙해져서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20대 초반에는 방방 뛰지 않고 조금은 차분하고 성숙한 느낌을 낼 수 있어서 좋은 부분도 있었던 것 같구요?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느낄 만큼 절제를 잘 하게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뭐 사실 지금 와서 보니까 절제라기보다는 그냥 다 꾹꾹 눌러 담아 참고 있었던 거에 불과했지만요.


진짜 문제는 공기 같은 우울이 점점 거대해지고 깊어지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사실 이게 너무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전에 발견해서 병원을 가거나 힘들다며 주변에 도움을 청했어야 마땅했을 텐데요. 쓸데없이 우울에 대한 맷집만 세져 버린 상태에서는 이 아이가 이렇게 거대해지는 낌새를 눈치채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눈치챘다고 해도 별 수는 없었죠 사실. 그게 꾸준히 유지해 온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는 걸요. 마치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사람처럼, 제 생존의 도구였던 우울은 아군과 적군을 분간하지 못하고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은 지속되고 있었지만 제가 아픔을 자각하기 시작한 거죠.


사실 우울이 그렇게 오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제가 꽤나 겉으로는 ‘고기능 인간’ 이었다는 점이 컸습니다. 힘겨움을 견디는 것에는 이미 유년 시절부터 이골이 나 있었고, 그 정도는 디폴트로 삼은 채 한국에서 평균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학업, 대학 진학, 뭐 나쁘지 않게 해냈습니다. 나름 이름있는 대학에 가고, 외모도 그냥저냥… 욕먹지는 않게 유지는 했습니다. 성격은 사실 좀 더럽기는 했지만, 그거야 입을 안 열면 될 일이었습니다. 말을 못 알아먹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덕분에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한 면이 있기는 해도 괜찮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죠. 근데 사실은, 저는 그렇게 보이는 데에 제 남은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거든요. 뭐 목적은 달성하긴 했네요. 뿌듯해야 할까봐요. 하하.


그렇게 보이는 와중에도 저는, 사실 매일같이 우울했고 길을 걷다가, 잠을 자다가, 누워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 벼락같이 울곤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의 무언가가 소용돌이 치는 속도가 임계점에 도달해서 짐짓 고요한 상태로 보이는 지경에 이른 것처럼, 저는 우울하다 못해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느끼면 울어야 하는데, 그러면 일상생활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차단하는 수밖에요. 일단 댐으로 막고 봐야죠? 뭐 다행히도 어디서 뛰어내린다거나, 손목을 긋는다거나, 목을 매단다거나 하는 모두가 알만한 자해를 하진 않았습니다. 아픈 건 싫거든요. 근데 사실 이것조차 스스로를 경멸하는 수단이 되더군요.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죽고 싶다고 엄살 부리는 새끼라고 나를 인식하고 있더라구요. 그치만 다른 무수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해치긴 했습니다. 먹고 토하고, 딱히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고, 힘들어도 죽어라고 걷고, 며칠씩 밤을 새는 등등.


제 우울의 크기는 확실히, 보이는 것보다 상당히 많이. 훨씬 컸습니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적힌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처럼요. ‘우울이 보이는 것보다 존X 큽니다’ 였달까요. 이 시기에 저를 가장 힘들게 만든 것 중에 하나는요, 나의 우울을 나조차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뚤어진 부모와의 관계, 폭력이 존재했던 어린 시절, 그래서 부족해져 버린 애착 관계 뭐…. 근데 이런 거 없는 사람도 있냐구요. 있나요? 그럼 축하드리구요. 아무튼 생각보다 한국 사회에서는 엄청 많잖아요? 근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렇게까지 우울해져서는 헤어나오지를 못하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케케묵은 상처에 머물러 있을 작정인 건지. 스스로를 미친 듯이 다그치면서 동시에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저에게 알 수 없는 무슨 자격을 찾으면서 수없이 스스로에게 비아냥을 흩뿌렸죠. ‘니가 이렇게 우울할 만큼 열심히 살았냐?’, ‘뭘 그렇게까지 힘든 삶이었다고?’, ‘니가 무슨 고난을 겪고 살았다고?’, ‘유난이다 참’ 등등…. 악독한 스승이나 부모가 했을 법한 말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들을 부모에게 듣고 자라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들은 지 꽤 된 것 같 같은데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런 것만 배워서는 아주 잘 하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죽지 못해 살기를 꽤 오랜 기간, 1년이 좀 넘었던 것 같은데…. 24살 즈음이었을까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요. 자다가 깬 아침에 갑자기 벼락같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울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이대로 가면 나 죽겠는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겠는데? 내가 죽이든, 뭔가에 죽든, 아니면 부서지든, 어떤 식으로든 파멸이 이르겠다. 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울다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울면서 칼을 들고 손목에 가져가는 순간에, 언니를 떠올렸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나보다 더 크게 무너지고 슬퍼할 사람, 어쩌면 나를 따라올지도 모를 사람. 그리고 내가 무너지는 것을 세상 누구보다 두고볼 수 없을 사람.


뭐 한 켠으로는 그냥 죽을 용기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만요. 나의 죽음이 언니의 삶을 파멸에 가져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기 때문에 차마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이성적인 판단이 돌아가는 순간을 가졌습니다. 어차피 저는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야만 했을 텐데요. 살아야 한다면 이대로 살 수는 없었죠. 디멘터한테 영혼이 빠진 것처럼 살아가는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 나 좀 살려달라고, 나 정신과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내가 너무 시체같다고. 수화기 너머의 언니는 놀람과 걱정과 안타까움이 덕지덕지 붙은 목소리로 정신과에 가자고. 일단 언니 집으로 오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즈음에 저는, 매일같이 그냥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내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그냥 세상에서 도망쳐서 분리되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상태였기에, 그저 언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언니 집에 가고, 울고, 이야기하고, 정신과를 예약하고.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했지만 그럴려면 금액이 많이 필요했고 부모님에게 말해야 하는데, 그런 충돌을 견딜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아니었기에 우선은 약을 복용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무언가에 웃기도 했고, 언니와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서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다 보면 언젠가는 평온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기더라구요.

KakaoTalk_20250326_164604239_02.jpg 이맘때에 약간 남는 힘 사이에 반 년 동안 타투를 6개를 했습니다. 그 시작이 된 첫 타투에요.

너무. 너무 어색했습니다. 마치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빌려서 살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평온과 안정이 내 인생의 주요한 키워드일 수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우울한 부분이 없을 리가 없는데. 마치 어딘가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도사리고 있는 우울이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우울할 이유를 찾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반가운 건가 싶기까지 하더군요. 우울은 습관이기도 했던 걸까요.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우울한 상태를 기본으로 해서 모든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구축해왔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는 모든 방식도 저는 우울을 기본으로 쌓아왔으니까요. 건물을 지어놨는데 그 건물 핵심 자재의 성분이 60프로 정도는 다 우울이었다고 생각하면 좀 쉬우려나요. 그걸 생각하고 보니 좀… 뭐 어쩌라는 거냐 싶어지더라구요. 억울하지도 않았어요 너무 허망해서. 그냥 체념에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잘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잘 없는 사람인데요. 몇 안 되는 잘한다고 시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체념과 포기입니다. 그래서 이때도 제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체념이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자라버렸는데. 우울이 습관이고, 기본 원료로 자라버린 삶을. 이제 와서 원료를 다 바꾸자니, 뭐 하려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마는 저는 그런 대공사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못 없앨 것이라면, 어떻게 잘 달래서 좋게 지내볼 방법이나 찾아봐야겠는데…? 라구요.


제가 아직 아주 오래 산 편은 아니라서요. 사실 이 방식이 현재진행형이긴 합니다. 어떻게 잘 달래보는 중이에요.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긴 합니다.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지,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잠을 조금만 못 자도, 조금만 멘탈이 흔들리는 일이 생겨도 아주 불쑥불쑥 뛰어올라서는 난동을 피우는 통에 귀찮은 게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미래를 생각하면 갑갑하고 암담해지기도 하구요. 얘랑 어떻게 평생 사냐….? 싶은 느낌이죠. 이 방법으로 힘닿는 데까지는 해 볼 생각이긴 합니다. 근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잘 안 먹히는 것 같거든요. 혹시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있나요? 그럼 공유해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지겨운 삶이지만, 아직 제 꿈은 와인 들고 깔깔거리면서 웃는 평온한 영국 할머니거든요.


어... 사실 대부분의 글이 결론이 없이 주절거리는 글이긴 하지만, 이 글은 이렇게 끝내버린다면 우울증을 완치하는 건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도로 잘못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첨언을 하게 되네요. 우울증은 완치가 됩니다. 저는 그냥, 다시 걸렸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다시 병에 걸릴 수 있어요. 감기에 나아도 다시 감기에 걸리고, 충치를 치료해도 다시 충치가 생기는 것처럼요. 너무 당연한 이치인걸요. 그러니까 제 말은, 우울증에 걸려 있어도 별 문제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살아집니다. 조금 힘겨울 때가 있을 뿐이죠. 큰 문제 없어요.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괜찮아요. 우리 모두 정상입니다. 나도 당신도, 모두 다요.


저와 모두를 둘러싼 세계가 둥글고 단순하게 인식되어도 괜찮은 일상을 영위하는 날들이 조속히 왔으면 좋겠네요. 물론 지금의 세상은 아주 뾰족하고 셀 수 없이 파편화되어서 여기저기를 찌르고 있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있지만요. 계속 그렇게 살 생각은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 일단 깜냥이 안되는 사람이 저지른 너무 큰 잘못부터 잘 처벌받는 세상이 되어주길 빌어봅니다. 우리 모두 버텨봐요.

작가의 이전글먼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