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빛 온기와 함께한 첫날

by 산산이

물론 미리 얘기는 했었지만,

추석 지나서 집을 나갈 거라는 나의 통보에 엄마는 화를 내셨다.

"그렇게 집에서 빨리 나가고 싶니?!"

하지만 화를 내도 이미 들뜬 내 마음엔 들리지가 않았다.

4년 만의 독립이다.


'집 계약은 다음 주에 하는 걸로 하고, 앞으로 사야 할게 냉장고, 세탁기, TV, 캣타워...'

구옥의 단점이라면 옵션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짐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사야 한다는 것이다.


4년 전 자취 때는 정말 돈 한 푼 없이 시작했던 터라

이사하고 한 달 동안 냉장고도 세탁기도 TV도 없이 지냈다.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세탁기는 빨래방을 이용했고 냉장고에 넣을 음식은 사놓지 않았다. tv대신 노트북으로 해결했다.

정말 눈물 나던 시절이었는데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가전을 마련했었다.


그래도 이번엔 구색은 갖춰서 시작할 수 있으니 많이 발전했다 생각하며

쿠팡을 켜고 최대한 가성비 넘치는 가전제품들로 고르기 시작했다.


세탁기 424,720
냉장고 342,870
캣타워 241,000
매트리스 189,000...

인터넷 신규가입 서비스로 받은 50인치 TV까지..!


그리고 2024년 9월 3일 입주일.

연차를 내고 본격적으로 청소에 돌입했다.

도시가스 설치기사를 부르고 아침 일찍 갔는데 웬걸, 가스레인지 자리가 너무 더러웠다.


'집이 이렇게 더러웠었나?'


살펴보니 눈에 보이지 않던 묵은 때들이 잔뜩이고

벽엔 뭔지 모를 구멍 뚫려 테이프로 막혀있기까지 했다.

심지어 벽 한가운데에서 전선이 튀어나와 있다.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이제 이 집은 내 집이다.

월세방일지라도 계약한 기간만큼은 내 집이니 그저 열심히 닦고 가리는 수밖에.

그렇게 바닥을 닦고 큰 러그를 깔고 매트리스와 이불,

당근에서 구입한 책상을 놓고 나니 좀 그럴듯해 보인다.


함께 도와주러 온 남자친구와 함께 이삿날 필수인 짜장면을 나눠먹고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까지 마치니 다시 한번 홀로서기가 실감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집을 나갔던 6년 전보다 더 큰 책임감과 함께 두려움도 느껴졌다.


정리하다 늦어져 밤이 되고 혼자 조명을 켜보니 꽤나 마음에 든다.

전구색 등의 따뜻함이 집안에 온기가 되어 퍼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와 멍냥이들이 살 집. 이곳에서 잘 되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이사 첫날의 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