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은 결코 낮지 않다

​‘사회적 가치’라는 프레임 너머의 진짜 나

by 유열

​우리는 저마다의 생을 항해하며 수많은 파도와 싸운다.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세상이라는 길 위에 서면, 그 파도는 유독 시리고 선명하게 밀려오곤 했다. 나를 가로막는 무심한 문턱, 그리고 나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타인의 시선은 늘 익숙하면서도 낯선 통증이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건 외부의 시선이 아니었다. 평범함을 넘어 무언가 특별한 성취를 내보여야만 내 가치가 증명될 것 같다는, 내면의 지독한 조급함이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치열하게 보낸 대학 시절, 나는 내 몫의 무게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조별 과제가 시작되면 누구보다 먼저 PPT는 내가 담당하겠다며 서둘러 손을 들었다. 장애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혹은 기여도 없는 사람으로 남겨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강박에,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푸른 빛을 견디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 그것은 열정이라기보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나를 소모하며 내던지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재택근무를 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전동휠체어의 조이스틱을 끝까지 밀어붙이듯 마음의 바퀴를 쉼 없이 굴렸다. 몸이 보내는 비명을 외면한 채 더 빨리, 더 멀리 도달하려 분투했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 시작한 싸움 끝에 남겨진 것은 찬란한 성취감이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막막한 불안과 지독한 피로뿐이었다. 그 치열함의 밑바닥에는 깊은 허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도 정말 괜찮은 걸까',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 하는 아픈 물음들이 마음을 헤집어놓았다.
​하지만 진정한 안식은 더 큰 승리를 거두거나 남들의 속도를 뒤쫓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한유열'이라는 이름 석 자 자체로 이미 온전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찰나에 찾아왔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무릎 높이의 시선은 결코 낮은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남들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놓치고 마는 길가의 작은 숨결을 발견하고, 천천히 흐르는 세상의 세밀한 결을 읽어낼 수 있는 나만의 정직한 조망이다. 내 속도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비로소 나 자신과 따스하게 화해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내게 글쓰기가 그러했듯, 내 문장들이 날카로운 증명이 아닌 부드러운 공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제 이 시선을 온전히 사랑하기로 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존재의 이유가 생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처음 숨을 내뱉던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귀하고 온전했다. 삶이 전쟁터처럼 느껴졌던 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평화를 아직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증명하려던 싸움을 잠시 멈추고, 지금 내 시선이 닿는 소중한 것들에 마음을 기대어 본다. 나는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의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나에게는 스스로를 안아주는 온기가 되길 바라며 다시금 조용히 마음의 바퀴를 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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