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굴레보다 더 단단했던 엄마의 사랑에 대하여
태어날 때부터 내게는 ‘장애’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하셨고, 결국 나는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내 삶의 첫 번째 커다란 상처는 다섯 살, 그 잔인했던 어느 날 찾아왔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의 그 차갑고 냉정했던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낯선 하얀 지붕의 집, 내 짐을 건네고 뒤돌아서던 뒷모습. 나는 그렇게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모, 나의 진짜 ‘엄마’가 단 하루 만에 나를 찾아와 넓은 품에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지난 25년 동안, 엄마는 나를 단 한 번도 ‘아픈 아이’로 두지 않았다. 구김살 하나 없이, 누구보다 밝고 해맑은 사람으로 나를 키워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엄마라는 거대한 뿌리가 나를 지탱해 준 덕분이다.
엄마의 삶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고단했다. 일찍이 홀로 되셔서 형과 조카인 나까지 두 아이를 건사해야 했던 세월. 엄마는 일하는 틈틈이 나를 업고 재활병원을 전전했다. 나중에야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내가 치료를 받는 복도 의자에서 짧은 쪽잠을 주무셨다고 한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면 나를 집에 데려다 놓자마자 쉴 틈도 없이 다시 일터로 달려가셨다.
때로는 내 투정에 속이 상해 나를 호되게 혼내기도 하셨지만, 그 마음은 나보다 더 찢어지셨을 테다. 나를 집에 두고 다시 일을 하러 가는 차 안에서, 핸들을 붙잡고 홀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으셨을까. 엄마의 그 눈물과 헌신이 있었기에 나는 장애라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 단순한 보호자 그 이상이다. 나의 다리가 되어주었고, 나의 용기가 되어주었으며, 내 삶의 모든 계절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빛이다. 당신의 청춘을 다 바쳐 나를 지켜냈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 한다.
“고모, 아니 나의 엄마. 당신 때문에 내가 이만큼 컸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엄마가 내게 준 사랑보다 더 큰 효도로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