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가장 무거운 돌덩이를 치워버린 날

나를 가두던 증오라는 벽을 허물고, 비로소 마주한 평온

by 유열

태어날 때부터 내게는 ‘장애’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감당하기 어려워하셨는지 나를 할머니 손에 맡기셨다. 내 삶의 첫 번째 큰 상처는 다섯 살 때 찾아왔다. 그날의 기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할머니가 시장에 가신 사이, 오랜만에 친아빠가 찾아와 어디론가 가자고 했다. 아빠와 놀러 간다는 생각에 어린 마음은 마냥 신이 났다. 하지만 아빠가 내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은 낯선 하얀 지붕의 집이었다. 어떤 아주머니에게 내 짐을 쥐여 주고 뒤돌아서던 아빠의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 나는 그렇게 고아원에 버려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캄캄한 시간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모, 바로 나의 진짜 ‘엄마’가 단 하루 만에 나를 찾아와 품에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데려가 지난 25년 동안 구김살 없이, 정말 밝고 해맑은 사람으로 키워주셨다.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 속에서 몸과 마음은 건강하게 자랐지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나를 버린 친아빠를 향한 지독한 증오와 분노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친아빠가 약물 남용으로 인해 지적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야 자기 죄를 돌려받는구나' 하는 통쾌함과 기쁨이었다
​엄마는 그런 내게 "이제 그만 아빠를 용서하자"고 자주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화를 냈다. 누군가 '용서'를 말할 때마다 속이 뒤틀렸고, 그 말은 내게 가장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폭력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문득 내 마음속에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커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더 깊은 평온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내 삶의 가장 큰 트라우마인 '아빠를 향한 증오'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이 나와 진정한 행복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내 안의 억눌려있던 아픔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평생을 저주했던 아빠를 위해 처음으로 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마주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용서를 시작해 볼게."
그 한마디에 엄마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나는 이제 막 용서라는 길의 출발선에 섰다. 상처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을 짓누르던 가장 무거운 돌덩이를 치워버린 기분이다. 나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건져내어 눈부신 사랑으로 길러준 엄마를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용서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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