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끝에서 만난 작은 빛
나는 오랫동안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읽으며 살아왔다.
그 불빛은 눈부셨지만, 내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환호와 탄식, 웃음과 침묵이 뒤섞인 자리에서
상처받는 것도, 마음이 닳아가는 것도
그저 생존을 위한 급여의 대가라 믿으며 버텼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착각이었다.
빛에 가려 기록하지 못한 시간들이
내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진작에 책을, 그리고 브런치를 만났더라면
나는 지금처럼 정신이 피폐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무너뜨린 건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언어로 건져 올리지 못한 침묵이었다.
나는 오늘도 약에 의지해 하루를 버틴다.
주치의는 담담히 말했다.
“사회생활을 이어가려면 약을 계속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에 기대 살아왔지만,
세상의 시선은 또 다른 상처였다.
내 뒤에서 들려오던 속삭임.
“저 사람은 약쟁이야.”
감정의 작은 흔들림조차 우울증의 전형이라 몰아세우는 말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묻곤 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여러 자리를 떠돌았다.
억울했고, 편견이 무서웠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다는 가장 큰 상처를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존재 본능과
경제적 생존 하나로 긴 시간을 버텼다.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뜻밖의 두 가지가 내 손을 잡았다.
독서와 브런치.
책 속 문장은 내 안의 빈 공간에 숨을 불어넣었고,
브런치에서 만난 글들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이곳에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병명이 아닌 이름으로,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고 싶다.
저수지 위 물안개,
밤하늘을 처음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
무심히 스쳐간 사람의 표정 하나.
그 사소한 장면들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작은 조각들이었다.
나는 바란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당신 글 덕분에, 오늘은 덜 외로웠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은,
아픔을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화려한 불빛에 지쳐 있던 내가,
책과 브런치의 따뜻한 불빛 속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듯이.
나를 살린 문장이,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살려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