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인이고 싶었어

by 이유하

그런 시인이고 싶었어

그것도 시라면 나도 쓰겠네

그렇게 말로 삿대질을 우다다다 받는 시인 말이야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종이와 펜을 너도 나도 찾는 풍경

그런 풍경을 자주 갖는 시인 말이야

그래서 기꺼이 내가 촉매가 되는 시인


아, 그래 이 사람이지

어느 강연장의 늠름한 모습이거나

싸인마저 멋들어진 그런 근사한 시인 말고


한 줄 읽었을 뿐인데

시어 하나 잠시 음미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앞에 나타나서는

조용히 찻잔에 따뜻한 물을 따라준다던지

아니면 얼음 가득 채워 콜라를 콸콸 부어 준다던지

그러고서는 그저 내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그런 시인 말이야


초대한 적도 없는데

심지어 집주인은 파워 내향형인데

사는 곳은 고층 아파트인데

그런 거 다 모르겠고

소개도 설명도 없이

내 앞에 의자부터 빼고 보는, 그런 시인 말이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스위치가 켜진달까

보일러가 작동한달까


기꺼이 함께 쓸쓸해주는, 그런 시인 말이야


나는 그런 시인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