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린 눈으로 거리가 온통 하얗게 옷을 입었다.
문구점 앞에 우스꽝스러운 눈코입을 가진 눈사람 하나.
눈사람 곁에 추위를 잊은 아이들이 저마다 빚은 눈뭉치를 던지며 뛰어다닌다.
봄에서 겨울이 되기까지 과분한 애정을 참 많이도 받았다.
머지않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땅 위로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그 새싹만큼 내게 심어진 씨앗 또한 씩씩하게 자라나겠지.
팔에서부터 어깨까지 퍼져있는 흉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는 이 팔로 다시 누군가를 다독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결국 누구를 지켜내지 못한 과거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지금 누구와 다시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껴야 한다.
그 방법을 알려준 그녀에게 감사하다.
책이라면 만화책이 전부였던 나의 삶에 시집을 내밀어준 사람.
고단한 날, 따스한 음성으로 내 귀에 시를 달아준 사람.
나에게 시를 먹여주고 채워준 사람.
그래서 그녀 옆에만 서면 시시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녀의 ‘시시해’라는 말장난을 계속 듣고 싶고, 아이처럼 웃는 그녀를 계속 보고 싶다.
그리고 문득문득 애달픈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작은 종이를 펴 보이며 나를 웃음 짓게 한 아이들까지.
모두가 다 고맙고 소중하다.
저 멀리서 그녀가 손을 흔들고 걸어온다.
그녀를 향해 와- 하고 두 팔을 힘껏 흔들며 답하는 아이들.
나도 그들 뒤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거인은 시인을 만나, 마침내 마음의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