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문구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카페 사장님이 문구점 문 앞에 종이를 붙여 놓았다는 걸 들었다.
' 개인 사정으로 잠시 휴무. 죄송합니다.'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잠시는 얼마 동안을 말하는 걸까.
걱정이 두통이 되고 두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그토록 좋아하는 러닝도 하지 못했다.
조심스레 해랑이에게 물어보니 나보다 더 걱정된 눈으로 울먹거릴 뿐 원하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퇴근길에 불이 꺼진 문구점을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주어 옮겼다.
그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를 불러주는 환청은 나의 그리움이 만들어 낸 걸까.
카페 사장님께 연락처를 물어봐도 될까.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질문과 걱정을 꾸역꾸역 삼킨 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함에 집으로 가는 동안 고개가 자꾸 땅으로만 떨어졌다.
“그러다 넘어지겠어요.”
.... 어?
그리운 얼굴이 내 앞에 서 있다.
그의 얼굴 뒤로 노을빛이 하늘 가득 물들어 있다.
“걱정했어요.”
속에 있는 쌓이고 쌓인 말이 그에게 날아간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노을만큼 붉다.
이 남자 많이 앓았구나.
“시간 괜찮아요?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기다렸어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차를 가져오겠다며 뛰어간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만큼 커다란 차가 내 앞에 서고 운전석에서 내린 그가 반대쪽 문을 열어준다.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에 은은한 방향제의 향이 그와 잘 어울렸다.
운전석 앞으로 몇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는데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진 속 그는 소방복을 입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햇살 그 자체였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눈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다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하필 매일 그곳에 머물렀는지.
왜 비 오는 그날 아이를 그렇게 품에 꼭 안았는지.
그가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만날 때마다 전해지던 그의 온기에 나는 오래전부터 안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창밖으로 한적해진 풍경이 나를 맞이해 준다.
산이 배경이 되고 꽃과 나무가 주인이 되는 곳.
머무는 마음들이 많은 곳.
계단을 올라 어느 한 곳을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조용히 따라갔다.
그가 멈춰 선 유리문 안으로 해랑이 또래의 아이가 사진 속에서 우리를 보며 웃고 있다.
우리를 따라온 달빛이 어느새 그의 눈 속에 박혀있다.
오랫동안 사진을 바라보고 선 그 옆을 가만히 지키다가 손끝으로 그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아팠을 그곳을 가만히 잡고 서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계단에 나란히 앉은 우리.
멀리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그날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집에 아이 혼자 있었어요.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늘 혼자였대요.
불길 너머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울지도 않고 나를 보고 있었는데..
불길이 너무 빨랐어요.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닿을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천장이 무너졌어요.
있는 힘껏 아이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그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일그러지는 입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팔이 이렇게 된 건 나중에야 알았어요.
아픈 것도 몰랐어요.
소리도 지르지 않고, 울지도 않던 아이의 표정이 더 아팠어요.
생각할수록 참담해지더라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날 이후로 매번 악몽을 꿨어요. 매일 밤 천장이 무너지고, 팔을 뻗으면 아무것도 없고..
아이가 울고 소리쳤다면 이 마음이 덜 사무쳤을까요.
그 뜨거운 불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미안해요.
오랜 시간 혼자였을 아이에게, 불보다 뜨거운 것은 외로움이었을까 봐.”
마치 어제의 일처럼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과 상처를 그는 계속해서 쏟아냈다.
“그날 이후로 혼자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막 미치겠어요.
숨이 막혀요.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그렇다고 내가 다 막아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혼자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우리 두 사람을 안아주고 떠나갔다.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며칠 전에도 아이를 누구보다 먼저 품에 안아줬고요.”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숨죽이던 풀벌레들이, 어느새 하나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허나 사랑이란 피곤해지면 잠자야 하는 것
또 굶주리면 먹어야 하는 것
또 또 반짝이는 사랑의 함대를 부추기는 것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올려지고 나를 바라본다.
“에밀리 디킨슨 시예요.
사랑도, 마음도 지치면 무너져요.
누군가를 지키려면 당신도 지켜져야 한다는 걸 잊지 마요.
그리고..
이미 많은 걸 지켜내고 있는지도 몰라요.
늘 누군가와 우리는 함께하고 있잖아요.”
오늘따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하늘에 별빛이 반짝이는 밤.
그 별빛이 우리의 눈에 박힌 밤.
우리의 그림자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