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느껴지던 그날의 일이 지난주가 되어가고 분명 지펴지는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찾아갈 수 없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퇴근 후 급식소를 지나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길.
보행자 신호가 켜지고 모두가 발걸음을 뗀 지 3초 정도 지났을까.
친구를 향해 돌진하던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건너려던 학생이 충돌했다.
순식간의 일이었고 크고 작은 탄성이 여기저기서 빗방울과 함께 튀었다.
다행히 자전거 위의 학생은 천천히 일어나 넘어진 자전거를 세우고 다리 한쪽을 살짝 절뚝거렸다.
그러나 마저 안심하고 싶은 장면이 좀처럼 재생되지 않고 있었다.
넘어진 아이는 미동이 없었다.
불안을 먹은 축축한 공기가 내려앉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모자 쓴 여학생이 다가가 살며시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옆으로 다급히 핸드폰을 켜 전화하는 사람, 멈춰 선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제지하는 사람, 울먹거리며 아이를 둘러싼 또 다른 아이들.
그때였다.
문구점 문이 사납게 열리며 거칠게 빗속으로 뛰어들던 그 남자.
조금 전 조심스럽게 아이를 확인하던 작은 손과 정반대의 크고 투박한 남자의 손이 아이를 들어 올린다.
그 남자는 비를 피해 문구점 어닝 밑으로 몸을 옮기고 그대로 조심히 앉아 품에 든 아이를 확인한다.
아이가 천천히 눈을 뜬다.
한쪽 무릎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옷 여기저기 흙먼지와 빗물이 제멋대로 할퀴어져 있다.
그 남자가 아이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건다.
누구보다 놀랐을 아이를 향해 조금 전의 다급한 모습을 홀랑 감추고 그 큰 손으로 다정히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다.
“아이 가방 열면 전화번호가 2개 적혀있어요.
어머니는 근무 중에 전화를 잘 못 받으시니 아이 아버지 번호로 전화 좀 해주세요. 119 불렀다고 말씀도 해주시고요.”
소란에 놀라 뛰어나온 옆 카페 사장님께 다급히 부탁하는 남자의 목소리.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주변이 술렁인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주고 그 남자의 손에서 구급대원의 손으로 아이가 옮겨진다.
인파 속을 뚫고 가까이 다가가자 다시 다급해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초등학교 2학년 5반 이우주입니다. 얼굴은 창백한데 제가 누군지 알아보고 다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부모님 전화번호는 가방 안에 있습니다.”
아이를 태운 구급차가 출발하고 살짝 힘이 빠진 듯한 그 남자가 우두커니 길가에 남았다.
오늘도 울상인 그의 티셔츠는 얼룩질 이 시간을 예감했을까.
그에게 다가서려는 그 순간, 걷어진 팔 밑으로 옅은 빛깔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팔 안쪽을 따라 길게 번진 자국은 매끄럽지 않았는데 불길이 스치며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를 숨을 고르며 바라보았다.
지난밤 주저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울리지 않는 곳을 고집하는 체격.
그가 되짚어준 울새.
아이들에게서 전해 들은 수많은 일화.
그리고 내게 툭툭 던지던 묵직한 단어들까지.
불그스름한 자국 그 이상의 시간이 그의 팔 위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가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위험을 마주했는지를 깨닫게 했다.
나의 시선이 느껴졌을까.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확인하고 놀라는 그 사람.
뭔가에 들킨 것처럼 놀란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빨갛다.
“.. 괜찮아요?”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다 알면서도 묻고 싶은 말.
나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보이고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걷어진 옷을 내리다가 나와 눈이 다시 마주친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보기 좀 흉하죠? 이제는 저는 좀 익숙한데, 보면 다들 놀라서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연을 애써 포장하는 그의 말이 나는 아프다.
“하나도 안 흉해요.”
힘주어 말한 내 대답에 놀란 그가 나를 보더니 이윽고 다시 눈을 피했다.
그 순간, 무언가 내 안에서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레 굴곡진 그 자리 위에 내 손을 올렸다.
그 큰 몸이 놀라서 뒤로 넘어지든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 순간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흉터가 아니라 흔적이라고.
당신의 용기와 삶이 거기 새겨져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