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손은 말이 되려고

by 이유하


어쩌면 시인의 입은

말하는 일에는 서툴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의 볼에

가만히 입을 대거나

손바닥에 조심스레 입술을 얹는 일


입으로 응원하고

입으로 위로하는 일


백 마디 말보다

내가 가진 가장 연한곳을 내어주는 일


그래서인지

시인의 입은 말에는 자꾸 서툴러집니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무거운 돌문처럼,

달빛을 받아야만 열리는

어떤 신화 속 동굴처럼,

시인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다가


어떤 새벽의 공기와

그 새벽의 적절한 달빛이 만나

적막을 깨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립니다


그제야

동굴 속 웅크린 말들이

박쥐가 되어 뛰쳐나오기도 하고,

반딧불처럼 희미한 불빛을 안고 날기도 하고,

꽃잎처럼 흩어지기도 합니다


그 서투른 입이

아침 햇빛에 드러날까 두려워지면,

슬그머니 나타난 손이

입을 가리고 서서 대신 말을 꺼냅니다

그리고는 말들을 종이에 눕혀줍니다


시인의 입은

갈수록 더 과묵해지고

시인의 손은

갈수록 더 분주해집니다


손에 모습을 감춘 입은

용감해지고

종이에 기댄 말들은

마침내 날아갈 준비를 마칩니다


지난밤 동굴 속에 머물던

수줍은 말들이

손가락 아래 종이를 향해

미끄러집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인에게 손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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