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늦장을 부린 여름이었다.
이글거리며 버틴 태양이
찬 바람에 놀라 겨울을 흘겨보자
그제야 가을이 기지개를 켰다.
익어가는 가을의 냄새를 따라
온통 초록이던 도화지 위에
붉게, 노랗게
서둘러 시작된 붓질.
급한 마음 다독이며 정성스레 칠해진 가을.
할머니 댁 뒷산에 올라
울긋불긋한 산을 바라보던 딸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산이 염색을 하다 말았어.”
그 말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따라 웃음이 났다.
정말, 산마다 염색의 농도가 달랐다.
붉음과 노랑빛이 서로 엉키며
내게 가을은 주황빛이 된다.
나무마다 사랑이 달려 있다.
뒷산은 온통 주황빛.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이때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과 땀, 애정으로 자라난 감나무.
11월이 되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주황옷을 입고 합창을 시작한다.
그 노래에 나는 관객이 된다.
감격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가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물든다.
감나무처럼,
사랑으로
주황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