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깎다가

by 이유하

곱게 깎아진 참외를 입에 넣는 일이 익숙하던 내가

정성스레 노란 참외를 가만가만 깎고 있다


접시에 올려진 참외 중 가장 끝 부분을

먼저 입으로 가져가는 일

크고 탐스러운 부분을 남겨 놓는 일

누군가를 많이 위한다는 말입니다


일상에 빈칸을 반드시 챙겨두는 일

단 몇 시간의 고요에 전념하는 일

스치듯 보면 평온할 나의 하루가

가만히, 가까이 살펴보면

누군가를 많이 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 탈이 없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를 빨랫줄에 옷을 말리듯

가만히 널어 둡니다


좋아하는 색이 있었습니다

초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파랑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무엇이 좋으냐 물으면

그저 깨끗한 거, 밝은 거..

라고 중얼거립니다


어떤 색이 와서 구르든

돋보일 수 있게

헤아릴 수 있게

맑게 나를 두는 일


헤집는 것보다

내어주는 것이 더 편한 일


누군가를 많이 위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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