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고고하다 해서
시인도 고고할 거라 장담 말고.
시인이라는 말에
흠칫 놀라지 말고.
기대도,
실망도,
그 무엇을 느끼든
섣부를 테니.
휘둘러진 칼이나
쏘아진 총처럼
날카롭고 뜨거운 것만이
계몽은 아니니.
펜을 든 우리는
투사의 옷을 입고
히든카드가 될
반전을 품은 존재.
떨어지는 나뭇잎의 속내만으로도
펜을 앞세워
온갖 낯선 길을 종이 위에 보여주리.
누가 우아함을 말하는가,
누가 품위를 말하는가.
떠오르는 시구 앞에
지체 없이 달려드는 본능뿐.
그러니
시라 해서,
시인이라 해서
지어야 할 태도란 덧없는 것.
요즘의 하루만 봐도,
겨울의 공기를 몰고 와서
한낮에는 훈풍이었다가
가을의 끝자락을 남기듯.
가을의 제목 앞에
서둘러 단풍을 떠올리는 일,
이제는 놓아줄 것.
어쩌면
모두가 잠시 시인.
장전한 총을 들었다가,
칼끝을 비켜섰다가,
결국 저마다
흔적을 남기고 마는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