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얼굴 앞에서

by 이유하


단풍을 보러 갑니다

다음 주 예고된 비 소식에

가을이 서둘러 짐을 싸고 있을까 봐

바쁜 옷자락을 잡아보려 합니다


우리는 요란한 것에 먼저 눈길을 빼앗기지만

여운이 남는 쪽은

언제나 묵묵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두른 내가 무안할 만큼

앞다투어 펼쳐진 가을잎의 향연에

눈이 멀고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성급히 도착한 겨울을

가을은 가만가만 달래는 중입니다

조금도 몸을 사리는 기색이 없습니다


나무에 걸린 커다란 거미줄을 보며

아이가 소리칩니다

“엄마, 벌레가 아니라 잎이 걸렸어.”


정말,

늠름히 쳐놓은 거미줄에

단풍잎 하나

은행잎 하나

“거미줄에 낭만이 달렸네.”

거미도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아,

덤덤한 가을 앞에 포개지는

덤덤한 얼굴 하나


무심히

무던히

나를 지켜준

얼굴 하나


당신의 삶에도

가을이 저무는 중입니까

혹, 고독히 앉아

다가올 겨울을 그리는 중입니까


은행잎 같은 노란 웃음으로

내 눈을 안심시키고

그 아래, 겨울 서리에 젖은 뒷모습을

감추고 있진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