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고 있습니까

by 이유하


코끝이 빨개진 시린 겨울밤

일기를 쓰려 편 노트에

한여름의 거실에 앉아

숟가락으로 수박을 시원스럽게 퍼먹던

그 여름의 내가 떠 있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닳지 않던

해가 져도 남아 있던

어린 날의 여름이

그 여름의 내가


삶의 절반 즈음에 다다르니

종종 지난 순간이 떠오릅니다


저 멀리 손 흔드는

훗날에 당도할 땐

그때는

이 겨울의 나를

데려다 앉힐까요


어릴 땐

여름을 좋아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맺히던 땀방울을

귀를 따갑게 하던 매미의 울음까지


그 여름을 그리워하다가

문득 애달퍼집니다


어쩌면

내 삶에 여름이 지고 있는 까닭일까요